쉰한 살 먹은 얄개 "녹슨 연기에 기름칠 중"

나이 쉰이 넘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얄개(얄궂은 개구쟁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이승현(51)은 영화 '고교 얄개'를 비롯한 얄개 시리즈에서 주연을 맡으며 1970년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인기를 누렸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 돌연 연예계를 등지고 외국으로 떠났다.

여러 나라를 떠돌던 이승현은 11일 방송을 시작한 TV조선 시트콤 '웰컴 투 힐링타운'으로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힐링타운'은 50년 지기(知己)인 세 노인이 한방 전문 실버타운인 힐링타운으로 내려와 우정과 사랑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승현이 연기하는 '노영만'은 최신 개그 유행어를 구사하며 젊은 감각을 과시하는 캐릭터다. 1998년 한국에 돌아온 이후 몇 차례 영화에 조연으로 등장한 적은 있지만 주연급 TV 출연은 1984년 MBC '3840 유격대' 이후 28년 만이다.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이승현을 만났다.

주황색 머리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승현은 "노영만은 이름부터가 '영 맨(young man·젊은이)'이다. 젊게 살고 싶어 하는 그 캐릭터를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하다 머리를 염색해 봤다"며 "'안녕하십니까불이∼' '감사합니다람쥐∼' 같은 유행어를 배우려고 요즘은 '개그콘서트'도 열심히 본다"고 했다.

'힐링타운' 출연은 2003년 영화 '빅하우스 닷컴'에 캐스팅됐던 게 계기가 됐다. 그는 "제작비를 충당하지 못해 영화는 개봉을 못 했지만 당시 영화 제작에 참여했던 김홍백 PD가 이번에 '힐링타운' 제작 총괄을 맡아 출연을 제의해왔다"고 했다. "김 PD가 절 보고 '노영만 역할에 딱'이라는 거예요. 촉새처럼 까부는 게 얄개와 비슷해서 저도 부담이 없었죠. 그 자리에서 바로 승낙했어요."

이승현은 "오랜만에 하는 연기가 어색해서 촬영을 시작할 땐 녹슨 기계가 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시트콤은 상대의 대사를 바로바로 받아쳐야 하는데 그게 안 돼서 식은땀이 여러 번 났죠. 계속 연습하면서 조금씩 기름을 치다 보니 이젠 기계가 좀 돌아가는 것 같아요."

스타덤에 올랐다가 돌연 외국행을 택했던 데 대해서는 "얄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성인 역할을 맡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얄개 이승현이 갑자기 멜로영화에 나오면 사람들이 웃었을 거예요. 독자(獨子)가 '딴따라' 배우를 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셨던 부모님도 유학을 권하셔서 외국으로 간 거죠." 하지만 "말이 유학이지 어머니의 사업이 실패한 뒤로는 닥치는 대로 일해서 생계를 잇는 데 급급했다"고 했다. 캐나다에서 호텔 청소, 접시닦이 같은 일을 전전했고 필리핀으로 건너가 선교활동도 했다. 그는 "밑바닥을 헤매면서도 한국에서 배우로 재기하겠다는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예전의 인기가 그립지는 않을까. 그는 "생각은 나지만 지금은 현실을 직시하는 게 맞다"고 했다. "한때 잘나갔던 배우가 어디 한둘인가요? 지난 일은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면 되는 거죠." 그러면서 이승현은 "감독이 돼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라며 "시골 노인들이 모여 은행을 터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로 10월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