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인터뷰] "직원들 한 사람씩 다 지점장 만드니 1등 지점 되더라"

증권사 사장 시절 그는 사내 장기자랑 행사에 나와 트레이닝복을 입고 '마빡이' 춤을 춰 보수적 문화의 금융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은행장 시절엔 새해 첫 출근날 로비에 서서 반짝이 옷을 입고 개그콘서트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동작을 따라 하며 직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국내 4대 금융그룹의 하나이며 하나·외환은행 등 9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하나금융지주의 리더인 김정태 회장의 이야기다.

김 회장과 이른바 '하나로드(road)'를 함께 걸으며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하나금융에서 이름 붙인 '하나로드'라는 길은 서울 을지로 입구의 하나금융 본점을 출발해 덕수궁, 광화문, 청계천을 거쳐 다시 하나금융 본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하나금융 직원들은 1년에 몇 차례 부정기적으로 점심 대신 주먹밥을 먹으며 이 길을 걷는다. 만보계로 걸음 수를 체크해 인트라넷에 등록한 뒤 10걸음에 1원씩 기부한다. 만보계를 차고 5만 걸음 걸었다면 직원이 5000원, 회사가 5000원씩 해서 만원을 환경 관련 사업 등에 기부하는 식이다. 즐겁고 건강하게 살자며 김 회장이 도입한 색다른 기부 방식이다.

 

―직원들 앞에서 왜 자꾸 망가지나?

"그래도 나는 대장이라 (제일 동작이 쉬운) 갈빡이를 해 덜 망가졌다. 마빡이·얼빡이·대빡이 이런 건 더 어렵다. 갈빡이가 그나마 제일 쉽다. 직원들이 뭐라고 하길래 '아니꼬우면 네가 사장 해라' 그랬다. 머리숱 없는 임원들한테 '자연산 마빡이' 시키면 직원들이 너무 좋아한다." (마빡이는 개그콘서트에서 2006~2007년 방송했던 코너다. 이마가 훤히 드러나는 가발을 쓰고 나와 머리를 때리는 몸개그로 웃음을 줬다.)

―펀(fun)경영, 팔로십(followship) 같은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나.

"나는 놀기를 좋아한다. 일은 남들한테 시키고…. 직원들을 일의 중심에 놓으면 그게 가능하다. 일선에서 영업할 때 지점장 중에서 1등 한 비결이 있다. 지점 직원들을 한 분야씩 다 지점장으로 만드는 거다. 대출 지점장, 펀드 지점장, 적금 지점장, 외환 지점장 식으로. 자기 맡은 일은 자기가 최고가 되게 하면 된다. 그러면 각자가 알아서 한다. 지점에 지점장이 한 명인 것 하고, 열 명 있을 때랑 누가 이기겠나."

―말은 쉽지만 실행이 어려울 것 같다.

"아니다. 직원들을 재미있게 해주면 직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게 된다. 나랑 일했던 직원들은 영업점 1등 상금 나올 거 미리 달라고 했다. 일종의 '가불'인 셈인데, 자기들끼리 신나게 놀고 와서 나중에 1등 상금 받으면 나한테 갚는다. 재미가 있어야 그게 가능하다. 하나은행 송파지점장 할 때는 업무 마치고 직원들을 승용차에 태워 스키장으로 내빼곤 했다. 야간 스키 타고 라면에다 술 한잔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8시에 출근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과 경남고 동기라 화제가 됐다.

"학교 다닐 때 나랑은 과가 달랐다. 문 고문은 공부 잘하는 착한 과고, 나는 이런 과고(김 회장은 손을 꺾어 술 마시는 포즈를 취하며 웃었다). 걔들은 공부하고 지냈고, 난 '죽림칠현'이라는 서클을 만들었는데, 요즘 일진처럼 왕따 만들고 그런 건 아니고 약한 애 건드리면 혼내주는 서클이었다. 그 서클이 우리 때부터 아래로 6기수 더 내려가더라. 요즘도 자주 만난다."

―고교 졸업 후 대학을 마칠 때까지 9년이나 걸렸는데 왜 그리 오래 걸렸나.

"어렸을 때 집이 굉장히 잘살았다. 선친이 1960년대에 MJB커피와 벙커C유 대리점을 했다. 사업을 네 번 실패하면서 완전히 끝났는데 그때 '아 인간이란 이런 거구나'하는 걸 느꼈다. '사장님, 사모님' 하던 사람들이 나중엔 '이× 저×' 하면서 돈 갚으라고 하고. 대학교 때도 돈 벌어 다녀야 했는데, 조그만 방 하나에 공동화장실 쓰고 부엌도 없는 혜화동 산자락 벌집에서 살았다. 군대도 먹고 살기 힘들어 입에 풀칠하려고 갔다."

―고달픈 청년기를 보낸 게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줬나?

"고난을 극복하는 힘을 키웠다. 어릴 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희망이 있었으니까 극복할 수 있더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반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성균관대 행정학과는 고시 공부하러 간 것 아닌가.

"처음에는 공직자가 되려고 했다. 나름 열심히 했는데 뱅커(banker)로 가라고 하나님이 점지한 거 같다. '즐기면서, 자기의 업의 본질을 이해하면서, 정말 열정적으로 일하자'. 내 모토는 어느 자리에서도 같다."

―가족은.

"와이프와 아들 하나다. 와이프가 고생 많이 했다. 내가 영업 섭외하고 다닐 때 맨날 차 가지고 와서 술 취한 날 데리고 가고. 그땐 대리기사가 없었으니까. 살면서 아이 둘을 잃었다. 인생을 살다 보니 '우리가 모르는 각자의 아픔이 있다.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겠구나. 이 사람이 어떤 일을 해도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게 그것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존경하는 분은?

"윤병철 전 회장님(초대 하나은행장)한테는 풋풋한 인간적인 냄새가 있다. 김승유 회장에겐 일에 대한 사랑, 열정이 있다. 그 두 분을 다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올 초 하나지주 김종열 전 사장이 중도 하차하면서 후계구도가 바뀌어 덕을 봤다고 볼 수 있다. 운이 좋은 건가?

"그분(김 전 사장)보다 내가 역량이 뛰어난 게 아니다. 전략이나 열정이 대단하신 분인데, 조직의 변화에 따라 내가 운이 좋아서 됐다. 만약 위기 없이 평탄하게 넘어갔다면 (내가 회장이 될 수 있느냐는) 모를 일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보다 보면 실력보다 운일 때가 있지 않은가."

―김승유 회장이 인수인계할 때 뭘 특별히 당부했나.

"변화에 대응하라는 것. 딱 한마디다. 퇴임하시는 날 액자에 써 줬다."(김승유 전 회장은 퇴임하면서 30여년 동안 사무실에 걸어놨던 액자를 김 회장에게 물려줬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제품 환경은 변화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은 어떤 조직이라도 파괴할 수 있다'는 경구가 적힌 액자다. 1920~40년대 미국 제너럴모터스(GM)를 이끌었던 앨프리드 슬로언의 말이다. 그 아래 김 전 회장은 '변화에 대한 대응은 우리 경영자의 영원한 숙제입니다'라는 말을 직접 적어 넣고 서명을 해 후임자에게 건네줬다.)

―회장이 되셨으니 자기만의 색깔을 내고 싶을 텐데.

"김승유 회장과 하나금융그룹 비전(vision)을 같이 세웠다. 2015년까지 '초우량 종합 금융 서비스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비전 속에 '네트워크'가 들어가 있다. 스마트폰 시대에 대한 대비를 얼마나 빨리 하느냐가 중요하다. 스마트폰에 결제 기능을 넣어서 전자지갑으로 만들어 신용카드를 대체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외환은행에 5년간 독자 경영을 약속했는데 가능한가?

"내가 (인터뷰에서) 말을 잘못하면 큰일 난다.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보자. 서로가 교감을 가질 때 된다는 이야기다. 꼭 기간이 중요한 게 아니다."

[김정태 회장 약력]

-1952년 2월 부산 출생
-경남고·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서울은행 입행
-신한은행 영업부 차장
-하나은행 지방지역본부 본부장
-하나대투증권 사장
-하나은행장
-하나금융지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