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의 히어로 & 히로인] [19] 진정 고독한 사람만이 외로운 타인을 이해한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텔레비전을 켠다는 친구가 있다. "혼자라는 걸 잊어버리게 되거든." 영화 '아멜리에'의 여주인공 아멜리에(오드리 토투)도 그렇다. 카페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그녀는 집에 들어오는 순간 텔레비전을 켠다. 저 홀로 울려대는 텔레비전 소리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의 일부분이다. 상상 속에서 종종 그녀 자신이 텔레비전 속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그녀는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느낌에 대해 처절하도록 잘 알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 고독의 역사는 꽤 길다. 유년시절부터 그녀의 친구라곤 금붕어 한 마리뿐이었다. 의사인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진료할 때를 빼곤 어린 딸을 안아주지 않았다. 아빠의 청진기가 가슴에 닿을 때면 너무 설레어 여섯 살 아멜리에의 심장은 쿵쿵 뛰었고 아빠는 그런 아이에게 심장병이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아이는 학교에 가는 대신 홈 스쿨을 해야 했다.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엄마마저 세상을 떠난 뒤 어른이 될 때까지 이 외톨이 소녀가 어떻게 살았을지, 영화에 나오지 않아도 우리는 아프게 짐작할 수 있다.

어른이 된 아멜리에는 엉뚱한 방식으로 이웃들의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소통을 거부하고 골방에 처박혀 그림만 그리는 노화가의 말벗이 되고, 짝사랑에 애타는 남자를 상대와 맺어주고,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는 노파에게 가짜 편지를 배달하는 식이다. 그녀가 유달리 착하거나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성품의 소유자여서가 아니다. 무얼 해도 '인형과 노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처럼 인형과 텔레비전 말고는 친구가 없는 다른 사람들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아멜리에는 자신과 꼭 닮은 외로운 몽상가 니노(마티유 카소비츠)와 사랑에 빠진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가진 게 없는 청춘이지만 오토바이에 꼭 붙어 앉아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둘의 얼굴은 더없이 충만하다. 보는 이도 덩달아 안심이 된다. 아무도 고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전염이 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