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가 포기한 지 오래… 사시사철 '할인 백화점'

"세일 기간이 아니라도 이제 정가 주고 물건 살 일이 없어요."

주부 윤영미(가명·42·서울 서초동)씨는 예전엔 잘 가지 않던 집 근처 백화점에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들른다.'시즌 오프(off)' '가격 인하' 등 갖가지 명목으로 값을 낮춰 판매하는 상품이 많기 때문이다. 20일엔 유명 브랜드 남편 정장을 20% 할인된 값에 샀다. 백화점들의 시즌오프 가격인하는 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됐고, 오는 8월 31일까지 계속된다. 참여 브랜드도 170개가 넘는다. 이들은 석 달 동안 '정가'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 여름세일 기간도 지난해보다 2주일이나 늘었다. 29일 정기세일 개시에 앞서 22일부터 1주일간 브랜드 세일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세일을 시작하니까, 총할인기간은 지난해보다 3주가 늘어 38일간에 달한다. 5월 말부터 8월까지 여름 내내 백화점들은 '할인백화점'이 되는 셈이다.

백화점들이 이렇게 대대적인 할인을 계속하는 건 장사가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5월보다 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지만 "내용은 형편없다"는 게 백화점 측의 토로다. 한 백화점 임원은 "가격 할인, 균일가 상품전 등 기획전으로 매출을 만회했을 뿐 정상가 상품이 안 팔리는 바람에 이익은 20% 가까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의 한 간부는 "이렇게 오랫동안 세일을 하면 정상가 상품을 팔기도 어렵고, 백화점 이미지도 타격을 입지만 중위권 이하의 브랜드들은 쌓여가는 재고를 처리하도록 할인 기간을 늘려달라고 아우성"이라고 말했다.

백화점들의 세일기간은 제한이 없다. 현 규정상 할인했던 제품을 정상가로 환원시킨 후 20일만 지나면 다시 할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션상품은 한철만 팔고 나면 '판매 수명'이 끝나기 때문에 할인을 했다가 다시 정상가로 돌릴 일은 거의 없으니 계속 할인을 하게 된다.

이제는 '할인'만으로도 물건 팔기가 어렵다는 푸념도 나오고 있다. 아이파크백화점의 경우, 주요 백화점들보다 하루 앞선 22일부터 여름 정기세일에 들어가고, 구매금액의 5~7%에 해당하는 상품권까지 증정하기로 했다. 주요 백화점들도 초특가 와인 방출전, 재고상품을 초저가에 판매하는 '사계절 상품전' 등을 경쟁적으로 열고 있다.

마일리지 혜택까지 꼼꼼히 따지는 고객을 잡기 위한 부대 혜택도 강화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플러스 알파' 혜택을 찾는 소비자들을 위해 백화점 신용카드 소지자에게 백화점 주변 맛집 및 헤어숍, 유명 호텔체인 등에서 추가 할인혜택 등을 제공하는 'H-프리미엄 서비스'를 대폭 확대했다.

백화점뿐 아니라 대형마트도 사활을 건 '세일 경쟁'에 나서고 있다. 유통법의 강제휴무 등 영업제한을 받고 있는 대형마트는 5월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5.7%나 줄어 비상이 걸렸다. 이마트는 이번 주부터 매주 목·금요일에 '국민장터'를 신설해 신선식품부터 생활·가전용품까지 5~6개 품목을 최대 40%까지 할인한다. 21일부터는 동해안에서 제주도까지 10대 포구에서 잡은 생물 햇오징어를 50% 정도 싼 1마리에 1350원에 판매한다.

롯데마트는 22일부터 2주일간 '상반기 결산세일'을 열고 2주 동안 생닭·장어·참기름·세제 등 총 400여개 품목을 30~50% 할인한다. 매주 10~15개 상품을 선정해 1000원 균일가에 파는 행사를 계속 열고 있고, 21일부터 일부 신용카드 이용고객 대상으로 구매 금액별로 6개월 또는 10개월 무이자 할부를 연중 제공한다. 전자제품이 아닌 대형마트의 일반 상품에 무이자 할부혜택을 제공하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