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국채 대거 사는 외국인… 기대 반 우려 반

최근 한국과 일본에서 외국인들의 국채 투자가 크게 늘어나 정책 당국자들을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 일본은행은 20일 "3월 말 현재 일본 국채의 외국인 보유 잔고가 1년 전보다 23% 증가한 76조엔을 기록했다"며 "외국인 보유 비중도 1년 전 5.0%보다 크게 증가한 8.3%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유럽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일본 국채가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국 국채의 외국인 보유 비중은 2008년 7.0%에서 지난해 14.9% 수준으로 확대됐다. 외국인의 국채 매수 확대는 우리 경제 체질을 좋게 보고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국채 시장이 외국인에게 휘둘려 금리 정책이 안 먹히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면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IMF(국제통화기금)는 "한국과 일본의 외국인 국채 보유 비중이 지나치게 낮은 편"이란 지적을 담은 연구보고서를 내놨다. IMF는 왜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일까?

◇외국인 국채 비중 늘어나면 이자율 하락

IMF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를 기준으로 한국의 외국인 국채 보유 비중(14.9%)은 주요국 가운데 일본(5.0%)에 이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호주(74.7%), 프랑스(58.0%), 독일(59.7%), 미국(31.6%)은 우리보다 훨씬 비중이 높다.

한국은 대신 연기금 등 공공 부문의 국채 보유 비중이 매우 높다. 23.9%로 일본(18.5%)보다 높고, 미국(37.2%) 다음으로 비중이 높다. 공공부문이 준(準)정부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정부 기관끼리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셈이다.

IMF는 외국인 국채 보유 비중 확대는 여러모로 이득이 많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외국인 보유 비중이 10% 늘어나면 국채 이자율은 0.32~ 0.43%포인트 하락하는 효과가 있다"며 "유로 지역에선 0.66%포인트까지 하락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채 수요자 시장이 내국인으로 한정돼 있을 때보다 외국인으로 확대되면 보다 싼 금리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주겠다는 곳이 늘어나니 싼 이자에 돈을 빌릴 수 있는 상황으로 이해하면 된다. 일본의 경우 19일 현재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0.805%로 역사적 저점에 근접하고 있다.

외국인 국채 보유 확대는 국내 저축을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IMF 보고서는 "민간 부문이 저축할 돈을 쪼개 국채를 사는 상황에서, 외국인이 국채를 더 많이 사주면 그만큼 민간 부문이 저축을 더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고 설명했다.이 같은 점을 고려해 한국과 일본은 외국인 국채 보유 비중이 더 늘어야 한다는 게 IMF의 지적이다.

◇위기 때 시장 교란 위험 커져

하지만 최근 국제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외국인 국채 보유 비중 확대는 '양날의 칼'이다. 금융위기 같은 비상상황이 닥치면 외국인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갖고 있던 국채를 내다 팔 것이고, 그 여파로 국채 가격이 급락(국채 금리 급등)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혼란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 등 남유럽 재정위기 국가들에서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것이 이런 맥락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위기 때 외환시장이 큰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외국인 국채 투매(投賣)까지 겹치면 그나마 무풍지대였던 국채시장마저 크게 교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사히(朝日)신문도 "외국인 투자 국채 보유 비중이 늘면서 외국인에 의해 일본 금리가 좌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내국인의 국채 보유 비중이 높으면 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0%를 넘으면서 피치로부터 국가 신용등급을 두 단계나 강등당한 일본이 남유럽 국가들처럼 부채 위기를 겪지 않는 것은 국채 대부분을 내국인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아무리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하더라도 내국인 입장에서 최후의 보루인 국채를 파는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IMF 보고서의 권고와는 반대로 한국과 일본 정책 당국자들이 모두 외국인의 국채 보유 비중 확대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일단 안전장치를 최대한 확보해 놓는 게 우선"이라며 "우리가 아시아 국가 간이라도 다른 나라의 국채에 투자할 경우 사전에 통보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안전장치 확보 차원"이라고 말했다.

호불호를 떠나 외국인의 한국 국채 투자 러시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각국 정부가 신뢰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이 상대적으로 양호해 국채의 투자 매력도가 높기 때문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32%로 OECD 평균 102%에 비해 훨씬 낮고, 국가 신용등급도 상향 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펀더멘털에 비해 채권 값은 싼 편이다. 3년 만기 한국 국고채 유통 수익률은 20일 현재 연 3.29%로 1% 내외에 그치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높다(채권 값은 싸다는 의미).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외국인 국채 보유 비중이 80%에 육박하면서도 글로벌 위기 때 큰 문제를 겪지 않는 호주 등을 벤치마킹해 보다 근본적인 시장 안정 대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