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모은 177억원어치 종자 기증

"'씨드홀릭(Seed-Holic)'이죠. 내일도 오전 5시 새로운 야생 종자를 만나러 (경북)상주 공검지에 갑니다."1984년 고려대에 부임한 강병화(65·사진) 명예교수는 지금도 한 달에 20일 정도 야생 종자 수집을 하러 산과 들을 누빈다. 지난 2월 정년퇴임한 그는 28년간 수집한 야생식물 종자 1700여종 7500점을 19일 고려대에 기증했다. 기후변화와 국토난개발 등 세계적으로 2만여종 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채종(採種)이 가능한 종자 90% 정도를 강 교수가 직접 모아 고려대 야생자원식물종자은행에 기증한 것.

강 교수는 "7500점의 야생 종자 모두 사연이 있다"고 했다. 종자가 여무는 과정을 지켜본 뒤 성숙한 종자를 수집해야 하기 때문에 수개월간 지켜본 종자가 아들·딸처럼 느껴진다는 것. 강 교수가 2010년 5월 태백산에서 수집한 나도개감채 종(種)은 한반도 중·북부 깊은 산에서 자라는 백합과 초본. 파처럼 가늘고 긴 잎에 손톱만 한 흰 꽃이 3∼6송이 핀다. 강 교수는 이때 채집한 종자가 미성숙한 상태인 것 같아 그 후로 네 번을 더 찾아갔다. 그는 "나도개감채가 특별한 종자는 아니지만 삼고초려한 이유는 귀중한 식물자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모든 약과 먹거리, 에너지의 근원은 식물"이라며 "많은 이들이 한국 식물 종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에 강 교수가 기증한 야생 종자는 산토끼꽃, 알꽈리, 해변황기, 사향 엉겅퀴 등 정부 기관·다른 민간 종자은행들이 보유하지 못한 종 다수를 포함하고 있다.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했을 경우 최고 177억원 정도다. 하지만 강 교수는 "수백억을 들여도 이 종자들을 지금 다시 채집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 말했다.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등으로 생태계가 큰 변화를 겪어 강 교수가 채집했던 야생 종자들이 사라졌기 때문. 강 교수는 최근 5000페이지에 달하는 자원식물 총람을 펴냈다. 98명 공동 저자가 참여했다. 이 책에는 강 교수 28년 연구 혼이 담겨 있다. 학계에 보고된 모든 식물의 이름과 용도 등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