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퇴치에 평생 바친 파란 눈의 천사

"치료만 받으면 살 사람들이 돈이 없어 죽어가는데, 으뜨케 마음이 아픈지…. 제가 맨날 울었어요. 우리 목사님(남편 휴 린튼·인휴)이 그랬어요. '도와주지 않을 거면 그만두라. 울기만 하는 건 아무 소용없다'고요. 남편 말을 듣고 더 이를 악물었어요."

옛일을 떠올리며 인애자(85·미국명 로이스 린튼) 순천기독결핵재활원장은 잠시 먼 하늘을 바라봤다. 인 원장은 일생을 헌신해 순천·광주 등에서 결핵환자를 돌봤고 '한국 결핵인들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1세대 한국 선교사 유진벨(1868~1925)의 외손자가 그녀의 남편이고, 인요한(53) 연세대 외국인진료센터장이 그녀의 막내아들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인애자 원장을 연세대 언더우드 관사에서 만났다. 자신이 한 일을 드러내길 사양해온 그녀가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결핵 얘기를 꺼내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아들 셋이 한국에서 결핵을 앓았어요. 우리는 온몸으로 결핵을 실천한 집안입니다."

인 원장은 순천을 기반으로 남편과 함께 선교사로 일하던 1960년 처음 결핵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광주기독병원에서 추가 진료를 받으러 오지 않는 환자 명단을 건네며 "집에 찾아가 봐달라"고 부탁해온 게 계기였다. 물어물어 찾아간 산골 마을. 처음 만난 23세 남자는 죽어가고 있었다. 가족을 검사해보니 7명이 전염돼 있었다. "왜 병원에 다시 가지 않았느냐 물으니 '버스비가 없다'고 했어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우선 선교사 사택 사랑방에 환자들을 모아 놓고 돌보기 시작했다. 순천보건소에 엑스레이를 찍으러 보낼 때는 결핵환자들에게 필름값을 쥐여줘야 했다. 보건소도 예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돈이 부족했다. "그때 제가 '전문 거지'(professional beggar)였어요. 사람들에게 '결핵환자들이 죽어가니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게 일이었죠."

결핵환자 엄마들이 치료받는 동안 아이를 돌봐줄 탁아소도 운영했다. 서울에서 분유를 얻어 나눠줬다. 이 엄마들과 테이블보·린넨 등을 만들어 미국 교회들에 보내 팔았다. 그 돈은 다시 아이들 병을 고치는 데 썼다.

1963년 예수교장로회 순천노회가 성경 공부하던 건물을 진료소로 내준 덕에 '사랑방 진료소'를 벗어났다. 지금의 기독결핵진료소다. 미국 구호단체와 독지가의 도움으로 결핵요양원 5개 병동도 지었고(1965년), 사회 복귀가 어려운 난치 결핵환자 요양원도 마련(1969년)했다.

인 원장의 남편 인휴 선교사는 호남 오지에서 교회 600여곳의 설립을 돕다 1984년 교통사고로 순직했다. 하지만 그녀는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내 손길이 필요한 사람, 돌봐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인 원장은 이후에도 10년 이상 순천에서 결핵환자들을 돌보다 1994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매년 두세 번 한국으로 와 몇 달씩 결핵요양원 일을 본다. 순천결핵재활원은 요즘도 매년 연인원 1만여명을 돌보고 있다.

"저는 대단한 게 없어요. 단지 이곳에 와 일하라는 하나님의 특별한 부름을 받고 따른 것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