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 속 미녀(스위스은행에 70년간 보관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깨워낸 그녀가 온다

파우스트는 5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서 15세 때인 1987년 레오폴트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둔 영재 출신의 연주자. 두 살 위의 오빠와 함께 11세 때 현악 4중주단을 만들고 5년간 합주했을 만큼 실내악에 대한 애착으로도 유명하다.

파우스트는 2009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0곡)음반에 이어 올해 작곡가의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으로 세계 평단의 상찬(賞讚)을 한몸에 받았다. 24일 내한 무대에서도 10여년 전부터 호흡을 맞추고 있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멜니코프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4·5·9번 등을 들려준다.

동시에 그는 스위스 작곡가 마이클 자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해 10여 곡을 세계 초연하면서 현대 음악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는다. 파우스트는 "과거의 곡은 악보와 문헌 등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작곡가의 생각을 연구해야 하지만, 현대 작품은 궁금증이 생기면 언제든 작곡가에게 달려가면 된다. 오늘날의 작품을 연주하는 건 예술을 계속 살아 숨 쉬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자벨 파우스트 바이올린 리사이틀, 24일 오후 5시 LG아트센터, (02)2005-0114

 

스위스인 악기 제작자 클로드 레베가 바이올린의 명기(名器)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대한 얘기를 들은 건, 1991년이었다. 1704년산(産) 스트라디바리우스가 70여년간 누구의 손때도 묻지 않은 채, 스위스 취리히의 은행 보관 창고에 잠들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악기 소유주인 남작 집안과 연락이 닿았고, 악기 검증에 입회했다. 악기 보관함에는 진품을 입증하는 영수증도 들어 있었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라는 별명이 붙은 이 명기는 이후 독일계 은행인 도이체방크에 팔렸다. 은행은 악기를 놓고 고심하던 끝에 1996년 당시 명성을 떨치고 있던 독일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대여해 주기로 결정했다. 이 행운의 연주자가 24일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 이자벨 파우스트(40)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깨워낸 그녀는 전화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새로 만든 악기처럼 뻑뻑해서 제대로 소리를 되찾기까지는 5~6년 가까이 걸렸다"고 말했다. 파우스트는 "악기를 손에서 놓지 않고 길들여가자, 매달 아주 조금씩 부드러워지면서 제소리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16년간 연주회에서 한 번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던 이 바이올린을 '소중한 친구'라고 부르면서 "지나치게 어둡지 않고 수정처럼 또렷하면서도 광채 나는 소리를 낸다"고 자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