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편지] 또 다른 전선에서 피 흘린 '젊은 그들'

"지금도 그날이 생생히 기억이 나. 날이 어둑어둑할 때였어. 갑자기 일동이가 뛰어 들어오는겨. 깃대봉에서 기만이가 총에 맞았다면서, 숨을 헐떡헐떡거리면서 얼른 파출소 앞으로 나오라는겨. 기분이 나쁘더라고. 깃대봉이면 며칠 전에도 공비들과 한바탕 붙었던 데거덩. 소대장인 신 경장이 앞을 섰어. 공비들이 어디 있을지 모르니 횃불을 들고 갈 수도 없고, 그날은 달빛도 흐려서 앞에 가는 사람도 잘 안 보이더라고. 능선을 돌아서는데, 깃대봉 쪽에서 총소리가 나는겨, 기만이 아부지가 깃대봉으로 갔던 모양이여. 아들 시신이라도 챙긴다고 말여. 기만이 아부지도 죽을 뻔했어. 총소리를 듣고 우린 반대편 쪽에서 깃대봉으로 간 거지. 그랬더니 맞은편에 공비 놈덜이 있더라고 거기서 총격전이 벌어졌고, 그때 두 놈을 죽였지. 아주 어린애였어. 내가 그때 열아홉살이었는디, 열다섯인가 열여섯밖에 안 돼 보이더라고. 그렇게 공비덜하고 싸우고, 죽이고,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지 몰러."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내 앞에는 앙상하고 깊은 주름이 밴 시골 할아버지 한 분이 당시를 회상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할아버지들 다섯 분이 '의용경찰' 인우보증을 통해 위로금을 받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왔고, 사무실 한쪽의 탁자에 앉아 6·25 전쟁 당시 충북 보은 대원리 일대에서 의용경찰로 활동했던 얘기를 풀어놓았다. 그날 한 사람에 대한 인우보증을 두 사람씩 해서 할아버지 두 분이 참전사실 확인원을 작성했다. 벌써 60년이 흘러 날짜는 흐릿했지만 모두들 당시 상황은 또렷하게 기억했다.

흔히 우리는 '호국(護國)경찰'이라고 한다. 단순히 치안만 지킨 경찰이 아니라 누란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지킨 경찰이었기 때문이다. 전국에 수많은 의용경찰들이 6·25 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지며 오지를 정찰했고, 갓 스무살도 안 된 어린 소년들이 피를 흘렸다. 군인들은 최일선에서 군복을 입고 적과 맞서 싸웠지만, 최전방보다 더 치열했던 후방 깊은 전선에서는 아직 군복을 입을 나이가 안 된 수많은 젊은 의용경찰들이 출몰하는 무장공비를 막아냈던 것이다.

"나는 그려유. 돈 10만원 받는 것보다도 우리를 기억해 준다는 게 더 고마워유. 내가 이렇게 온 이유도 내가 거기에 있었다는 걸 사람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래서 이렇게 온 거유. 그리고 그때 죽은 사람덜을 꼭 기억해 주길 바랠뿐이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