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이오에서도 IT처럼 성공 가능성 커"

"20년 전 미국에서 현대·기아차, 삼성과 LG를 누가 알았습니까? 자동차와 IT에서 거둔 성공을 바이오(Bio) 분야에서 못해낼 이유가 없습니다."

세계1위의 바이오 제약사이자 세계 최대 항암제 메이커인 로슈(Roche)의 조셉 맥크래켄(Joseph McCracken) 파트너링 사업개발 글로벌 총괄사장은 "그간 한국의 바이오 연구자들과 함께 일해본 경험에 비춰볼 때 한국의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맥크래켄 사장은 로슈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는 비즈니스를 총괄하고 있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로슈는 한국에선 타미플루(신종플루 치료제) 제조사로 알려졌지만 '연구·개발 거인(R&D Giant)'으로 더 유명하다. 지난해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의 1400대 글로벌 기업 R&D 순위에서 화이자(2위), 마이크로소프트(3위), 도요타(4위), 삼성전자(7위)를 모두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 한 해 R&D 투자비가 9조9000억원(매출의 19%). 전 세계 대학 연구실과 바이오 벤처에 숨어 있는 '대박'의 가능성을 찾아 로슈의 R&D 돈줄을 대 키워내는 것이 그의 핵심 업무다.

맥크래켄 사장은 한국에서도 5~6개 대학·기업과 연구·개발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방영주 교수팀과 항암제를 개발 중이고, 바이오 벤처인 메디프론과는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한국의 바이오 부문은 덩치 면에선 분명히 중국에 밀리고 있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중국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해요." 지난 13~14일 지식경제부가 주최한 글로벌 바이오&메디컬 포럼에 연사로 초청된 그는 포럼 현장에서도 20여개의 한국 바이오 기업을 만났다고 했다. 그는 "그 가운데 5~6곳은 훌륭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며 "이들과 협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수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바이오 기업사(史)의 최고 성공 사례로 꼽히는 미국 제넨텍(Genentech)에서 10년 이상 경영진으로 일했다. 제넨텍은 1976년 UC샌프란시스코의 한 실험실에서 출발해 항암제 분야에서 블록버스터(매출 10억달러 이상을 내는 대형 신약)를 잇달아 내며 매출 15조원대 기업으로 성장한 회사. 맥크래켄은 2009년 로슈가 제넨텍을 인수한 뒤 지금의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제넨텍 같은 회사가 나올 수 있을까요?" 질문을 던져봤다. 그는 "왜 안 된다고 생각하나요?(Why not?)"라고 반문했다. "제넨텍의 핵심 성공 비결은 '과학이 먼저, 비즈니스는 그다음(Science first and the Business second)'이라는 철학이었어요. 한국 바이오 기업들도 인내심을 갖고 연구·개발에 긴 안목의 투자를 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는 특히 "바이오는 전자공학이나 물리학 분야처럼 빨리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1976년 세워진 제넨텍이 첫 제품을 허가받은 것이 1985년이었다는 것이다.

맥크래켄 사장은 '분명한 목표 설정, 그리고 선택과 집중 전략'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도미사일처럼 암세포만을 골라서 박살 내는 표적 항암제 ▲암 백신 ▲유전자 분석에 기반한 개인형 맞춤치료의 세 가지 분야를 앞으로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나올 유망 분야로 꼽았다.

그는 "바이오 분야에서는 정부와 기업이 함께 투자의 방향과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한국의 바이오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을 별로 받지 못했던) 제넨텍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