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파워 클래식] '不老'는 로망일까요, 노망일까요?

"옛날엔 못 살면 하층민(underclass)이라 했는데, 요즘은 자기 나이보다 늙어보이면 하층민이래요. 미국의 미래학자 페이스 팝콘이 책 '미래 생활 사전'에서 한 말이죠. 10여년 전 책인데도 한국 사회랑 딱 맞아떨어져요. 한국은 사람 나이에 민감하고, 피부에도 엄청 신경 쓰잖아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21세기에도 유효하구나 싶은 게 바로 그 점입니다. 도리언은 21세기 인물처럼 지극히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거든요."

불로(不老)를 향한 뒤틀린 욕망이 서울 한복판에서 되살아났다. 20일 오후 서울 교보문고 강남점 티움. 조선일보와 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으로 일곱 번째 북콘서트를 열었다. 주제는 '동안(童顔) 권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다이어트의 여왕' '아주 보통의 연애' 등 최신 트렌드를 문학적 시선으로 풀어써온 소설가 백영옥(38)씨가 강연자로 나섰다.

백씨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대해 "밑줄 긋고 싶은 경구가 많지만 줏대 없이 받아들이면 자칫 엉뚱하게 해석할 여지도 많아 굉장히 예민하게 읽어야 하는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작가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방탕하게 섹스하고 갖고 싶은 대로 가져라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자기를 깨끗하게 비움으로써 최대의 만족을 누리라는 청교도적 측면이 아닌가 해요. 소식(小食)하는 사람들이 적게 먹으면 맛을 훨씬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그것. 어쨌든 도리언은 자기 초상화에 칼을 꽂으며 죽거든요. 권선징악적 결말이죠."

이날 북콘서트는 사회를 맡은 어수웅 조선일보 문학담당 기자와 백씨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무더위와 택시 파업을 뚫고 참석한 독자들은 도리언처럼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게 과연 옳은지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고백하며 현장을 뜨겁게 달궜다. "저는 79학번 쉰두살 남자로 종종 서점에 와서 새로운 책, 새로운 사람을 만납니다. 나이에 맞는 얼굴이면 되지 않나요?" "마흔 넘은 제가 공부하러 학교에 가겠다고 하니 어린 애들이 젊은이들 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해 가는 거냐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제가 무슨 흡혈귀도 아니고…. 저는 젊은 사람들의 얄팍한 조숙함을 안 좋아합니다."

백씨는 "노인의 욕망은 로망인가, 노망인가. 이 책은 욕망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그 욕망을 이뤄버리는 거라고 말한다"면서 "결국 필요한 건 균형감각"이라고 강조했다. "나이가 들어 지혜가 쌓이고 경험의 폭이 넓어지면 삶이 여유로워져 욕망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니었어요. 어르신들을 보니, 몸이 생각만큼 잘 안 움직이니까 젊을 땐 충분히 참을 수 있었던 지점에서도 못 참고 화를 내더군요, 아이처럼. 그러니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몸은 노인인데 정신은 청년이면 그 삶은 지옥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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