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6.27 09:24

PEOPLE | 마임이스트 유진규

“지난 삶을 가만히 돌이켜보니, 언제든 하고 싶을 때 하는 게 정답이더라고요.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도 있듯이.
이미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이에요.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보자고요.
그게 진정으로 자기 삶을 사는 모습일 테니까.”

언어가 아닌 몸으로 교감하는 세계. 그 미지의 세계에서 홀로 분투하며 땅을 일구고 집을 올린 사나이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마임이스트 유진규. 그가 올해로 마임인생 40주년을 맞았다.

지난 5월 말 스물네 번째 춘천마임축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미치지 않으면 축제가 아니다’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춘천 시내에서는 연일 난장이 펼쳐졌다. 덕분에 축제를 찾은 관객들은 실로 오랜만에 일탈을 만끽했다. 오늘날 춘천마임축제가 영국 런던마임축제, 프랑스 미모스마임축제와 함께 세계 3대 마임축제로 우뚝 서기까지는 유진규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마임에 매료된 스무 살의 청년은 ‘마임이 아니면 죽음’이라는 비장한 각오를 다졌고, 그 후 어느새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마임의 불모지는 세계적 마임 축제의 장으로 화려하게 탈바꿈했다.

낯선 세계와 조우

유진규는 “다시 벼랑 끝에 섰다”라는 말로 요즈음의 자신을 설명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산문제 등 갖가지 어려움을 겪었다는 그는 사뭇 가라앉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예술감독으로서 20년 넘게 이끌어온 축제의 위기는 곧 그 삶의 위기로 다가왔을 터. 더욱이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런 와중에 그가 환갑을 맞았다는 사실이다. 몸도 마음도 청춘이라 믿었지만 언제 벌써 60대라는 낯선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예순이 넘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어요. 삶 자체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됐지요. 내 삶의 근본적 문제들을 생각하게 된 겁니다.”

누구보다 열정적인 마임이스트 유진규가 그깟 나이를 의식하다니? 지난 40년간 끊임없이 무대를 누비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조금은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내가 나이를 의식하게 될 줄은 몰았어요. 하지만 예순은 조금 다르더군요”라며 겸연쩍이 웃는 그다. 이처럼 솔직한 고백은 어쩌면 오랜 시간 무언가에 열중했던 자만의 전유물일지도. 그가 되돌아본 삶은 말하자면 스스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한 시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가 마임을 통해 전하고자 한 것은 ‘존재의 의미’라는 일관된 화두. 이는 물론 매번 새로운 형식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무대에서의 순간은 아름답고 매혹적이었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위해 무대 뒤의 그는 더욱 혹독해야 했으리.

그런 그를 이토록 오랫동안 변함없이 한길로 달리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단순히 마임에 대한 애정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겠지요. 마임이라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장르에 처음 뛰어들면서 한 결심은 ‘이것이 아니면 죽음’이라는 것이었어요. 스무 살 때 먹은 그 마음이 변하지 않은 것일 뿐…. 나는 그저 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이는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겉으로 내색은 않았지만, 건강이 심각한 지경에 이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관리에 더욱 열중했다. 모름지기 마임은 몸으로 하는 예술이 아닌가. “비결이요? 따로 없어요. 단,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몸은 마음과 같이 간다는 점입니다.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명상’이 특효라고. 자신이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흔들림 없이 할 수 있었던 것도 명상의 도움이 컸다고 귀띔한다. 그가 말하는 명상이란 좋아하는 무언가에 깊이 몰두하는 것.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커피를, 애인이 있는 사람은 사랑해마지 않는 애인을….” 좋아하는 한 가지만을 계속해서 되뇌다 보면 어느 순간 평온한 상태가 찾아오고 자신이 진짜 하고자 하는 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나’를 들여다보는 방

‘벼랑’에 섰다고 해서 지금 당장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는 여전히 마임이스트 유진규다. 오는 8월 중순에는 서울에서 약 열흘간 ‘까만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설치공연을 선보인다. 지난 2008년 처음 내놓은 ‘빨간방’과 지난해 ‘하얀방’에 이은 세 번째 방 시리즈다. 앞으로 1년 단위로 ‘파란방’, ‘노란방’을 기획, 총 5개의 방 시리즈를 내놓는 게 그의 목표다.

이 프로젝트는 그에게 실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쉼없이 이어온 자신의 작업세계를 완전히 뒤바꾸는 새로운 개념의 공연인 것. 약 5년 전부터 공간과 시간, 예술가와 관객이 고정돼 있는 기존의 공연 형식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는 그는 보여주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없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대중 앞에 섰다. “보여 주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냥 그 방 안에서는 그 자신이 주인공이죠. 혼자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해야 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고, 진짜 자신을 만나게 되지요.”

방은 누구나 관객이 되어, 혹은 예술가가 되어 시간과 같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다. 온통 까맣게 꾸며진 방의 미로 속을 헤매면서 관객은 거울과 같은 설치물들을 접하게 된다. 낯선 공간, 거울 속에 비친 낯선 ‘나’. 그 극도의 불안 속에서 자신을 응시하게 되는 낯선 경험. 그것이 유진규가 제시한 또 다른 형태의 마임이다.

“이런 설치공연을 보고 항간에는 마임이다, 아니다 말들이 많은데… 얼굴에 분칠하고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는 것만이 마임은 아니잖아요. 그건 마임의 일부분일 뿐. 언어가 사라진 속에서의 움직임, 그 속에서 교감하고 얻는 것이 모두 마임의 세계입니다. 세계라는 것은 결코 정해진 틀이 없지요”라고 그는 강조한다. 그의 몸짓마저 배제된 이 설치공연을 가리켜 속 깊은 한 관객은 이렇게 표현했다고. “마임이스트 유진규가 이제 ‘마임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새로운 ‘마임’을 시작했다.”

방 시리즈가 끝나면 그는 아마도 또 다른 세계를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끝까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그것이 그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지난 삶을 가만히 돌이켜보니, 언제든 하고 싶을 때 하는 게 정답이더라고요.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도 있듯이. 이미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이에요.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보자고요. 그게 진정으로 자기 삶을 사는 모습일 테니까.”

이렇게 말하는 그에게 ‘벼랑’은 어쩌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칠흑같이 깜깜한 방 안에서 처음에는 극도의 불안을 느끼지만 이내 편안함과 자유를 되찾게 되는 까만방의 관객들처럼 그 역시 벼랑 끝에서 안식을 얻게 될지도. 힘겹게 벼랑을 오른 이에게 그 끝은 오히려 자유니 말이다.


☞ 마임이스트 유진규는…

우리나라 1세대 마임이스트. 국내에서는 아직 마임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1960년대, 당시 열아홉 살의 유진규는 해외 극단의 마임 공연을 보고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 이후 대학 연극부에서 다시 마임을 만나게 된 유진규는 그 길로 마임의 세계에 몸을 던진다. 수의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을 뛰쳐나와 극단으로 향한다. 1972년 우리나라 최초의 무언극 <첫야행>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사람>, <빈손> 등의 공연을 이어간다. 1989년에는 역사적인 ‘한국마임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춘천마임축제의 모태다. 페스티벌의 작품 일부를 춘천 무대에 올리며 지금까지 계속해서 춘천에서 마임축제가 열리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 이후 춘천은 국제적 위상의 마임도시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그는 그곳에 둥지를 틀고 24년째 춘천마임축제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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