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저가 화장품… 방어株 새 얼굴로

주식도 해가 바뀌면 세대가 교체된다. 증시 방어주도 마찬가지다. 경제 상황이 악화해도 충격을 적게 받는 종목을 경기 둔감주라고 하는데, 주식시장이 우울할 때면 투자자들이 피난처로 삼는 경향이 있어 증시 방어주라고도 한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해와 다른 업종이 방어주 역할을 하고 있어 방어주도 세대교체가 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작년 방어주로 돋보였던 유통·통신·인터넷 업종은 지고, 제약·저가 화장품·모바일게임 업종의 강세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증권 전문가들은 지난해와 다른 해외 상황과 국내 정부의 규제가 증시 방어주 판도까지 바꿔놨다고 분석했다.

◇한물간 증시 방어주…통신주의 몰락

지난해 8월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됐을 때도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지수는 1800선 밑으로 주저앉았다. 이때 내수시장 중심인 업종은 상대적으로 반사 효과를 누렸다.

증시가 큰 폭으로 밀리기 시작한 작년 8월 8일부터 약 한 달 동안 통신 업종의 대표주인 SK텔레콤은 13.1% 올랐다. 통신업계 2위인 KT는 소폭 하락했지만,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5% 넘게 내린 것과 비교하면 하락폭이 크지 않았다. 해외 경기의 영향을 덜 받는 유통 업종도 강세를 보였다. 대형마트 업체인 이마트는 이 기간 22.5% 상승했다. 인터넷포털 업체도 주가 흐름이 좋은 편이었다. NHN의 주가는 3.3% 상승했다.

올해 하락장에서 이 종목들은 지난해와 달리 기(氣)를 못 펴고 있다. 국내 증시가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은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25일(27일 동안)까지 SK텔레콤은 11.0%, KT는 7.1% 내렸다. 같은 기간 이마트는 3.8% 하락했다. NHN은 소폭 올랐지만, 지난해보다 상승폭이 크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증시 방어주 역할을 했던 이 업종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요금 인상 제한과 영업시간 규제 같은 정책적인 문제다. 통신 업종은 무료 문자서비스와 통화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업황이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까지 겹쳤다.

성종화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온라인포털은 매출에서 광고비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50%가 넘어, 경기 상황에 따라 실적이 달라진다"며 "지난해에는 기관이 매수에 나서면서 주가가 올라 '증시 방어주'로 인식됐지만, 올해는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인터넷 업종도 부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증시 방어주 등장…제약주 강세

최근 하락장에서 돋보이는 종목은 의약품과 저가 화장품주, 모바일게임주다.

지난 5월 16일 이후 제약사인 녹십자는 16.7%, 한미약품은 20.5% 상승했다. 종근당도 27.2% 올랐다. 이런 업체는 지난해 증시가 하락할 때는 코스피지수보다 더 많이 내렸다. 김혜림 현대증권 연구원은 "의약품 업체는 원재료 비중이 20~30%로 낮은 편이고 수입 물량도 적다"며 "경기가 나빠진다고 약을 안 먹을 수도 없어 매출이 꾸준하게 생기는 데다, 내수 중심이기 때문에 해외 경기나 환율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의약품 가격을 일제히 내린 뒤 제약사들의 실적이 악화했던 만큼, 정부가 또다시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작다는 점도 부각됐다.

경기가 안 좋을 때는 립스틱이나 매니큐어 같은 저렴한 화장품의 인기가 좋아진다는 '립스틱 효과'를 한껏 받으면서 저가 화장품 업체도 증시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근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코스맥스는 36.8% 올라 지난해보다 더 큰 폭으로 주가가 상승했다. 작년 하락장에서는 주가가 흔들렸던 한국콜마도 올해는 11.2% 상승했다. 스마트폰이 통신기기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모바일게임주는 인터넷 업종의 투자 대안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중순 이후 컴투스와 게임빌은 각각 47.6%, 23.3%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