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 미군이 쓰던 지뢰방호 장갑차 MRAP 2000대를 공짜 또는 값싸게 도입 추진 중"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국방비 삭감으로 값비싼 신형 무기 대신 값싼 중고 무기 도입이 늘어나고 있다. 중고 무기 활용 사례는 과거 예산이 넉넉지 않은 중소국(中小國)에서 종종 있었지만 이젠 우리나라에도 중고무기 활용 바람이 불고 있다.

◇헬기·장갑차 등 중고무기 적극 활용론 대두

지난 19일 사단법인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과 방산학회가 주최한 한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무인헬기 동영상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ULB'(Unmanned Little Bird)라 불리는 이 무인헬기는 미 보잉사가 민간용 MD530F 헬기를 유인기 및 무인기 겸용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조 회장은 "우리 군도 (MD530F와 같은 계열인) 500MD 헬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으므로 노후한 500MD를 무인 헬기로 개조해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군 당국에서도 노후한 500MD를 개조해 훈련용 또는 무인 공격기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육군은 250여대의 500MD 헬기를 보유하고 있으나 30년 이상 돼 내년부터 2020년쯤까지 단계적으로 퇴역시킬 예정이다. 육군은 500MD 퇴역에 따른 전력공백을 메우기 위해 소형무장헬기(LAH)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2018년 이후에야 도입될 예정이어서 5~6년 정도 공백 기간이 생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500MD 헬기를 성능개량할 경우 2~3년 내에 개발할 수 있고 기체(機體)수명도 아직 남아 있어 장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미군이 쓰던 중고 장갑차나 헬기의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군 당국은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한 지뢰방호 장갑차 MRAP(엠랩) 약 2000대를 공짜 또는 값싸게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MRAP는 지뢰 및 급조폭발물(IED)에 대비해 차체 바닥 장갑을 V자로 제작한 특수 장갑차다. 이라크·아프간전이 끝나가는 상황에서 미군은 수만대의 중고 MRAP가 남아돌아 이를 처치해야 할 고민에 빠져 있었는데 우리 군이 이 장갑차들의 도입에 나선 것이다. 원래 대당 가격은 200만달러(약 23억원)에 달한다. 우리 군에서는 공짜로 넘겨줄 것을 미측에 타진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대당 8만5000달러(약 1억원)에 도입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지뢰방호 장갑차는 유사시 북한 급변사태에 따른 안정화 작전 때 꼭 필요한 무기이지만 우리 군에는 마땅한 장비가 없어 국내개발 또는 수입을 해야 할 처지였다.

이 밖에 미 해병대가 사용하다 노후해 퇴역시키기로 한 CH-46 수송용 헬기 26대의 도입도 추진되고 있다. 이 헬기의 도입은 우리 해병대에 단 한 대의 상륙기동 헬기도 없는 것을 딱하게 여긴 일본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 사령관의 제안으로 이뤄지게 됐다.

◇추가비용, 성능검증 문제 등 과제도

지난해 국방비 삭감에 쪼들린 영국 국방부가 경(輕)항공모함, 타이푼 및 해리어 전투기, 구축함, 정찰기, 장갑차 등 각종 무기들을 중고 시장에 내놨을 때도 청와대의 지시로 군 당국에서 구매 가능한 무기들에 대해 은밀히 파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당시 청와대 지시로 광범위한 검토를 했으나 우리 군에서 쓰기에 적절한 무기가 없어 포기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중고무기 재활용은 일단 비용대 효과면에서 긍정적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2010년에 도입된 해군의 P-3CK 해상초계기 8대는 미 애리조나주 사막에 보관돼 있던 퇴역 P-3B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국내 업체가 개조한 것이다. 총 5728억원의 돈이 들었지만 새 항공기를 도입하는 것에 비해 대당 500억원, 총 4000억원의 예산을 절감했다. 노후 항공기 개조에 대한 기술 습득도 성과물로 꼽힌다. 공군이 운용 중인 패트리엇 PAC-2 미사일도 독일군이 쓰던 중고 미사일로 신형 미사일을 도입하는 것에 비해 1조원가량의 예산을 절감했다.

하지만 중고 무기 개량 및 운용유지 과정에서 예상보다 많은 돈이 들 수 있다는 점과 성능검증 문제 등 극복해야 할 과제들도 남아 있다. 500MD 무인헬기화(化)의 경우 지상통제 및 데이터링크 시스템 구축에 많은 돈이 들 수 있고 무인기로는 덩치가 너무 커 격추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신형 무인기를 도입하는 게 낫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군 패트리엇 미사일도 발사대와 미사일은 중고 시스템으로, 지상 통제장비는 신형으로 짜깁기를 하다 보니 고장 등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고무기 재활용은 일부 해결돼야 할 문제점이 있지만 인식과 발상의 전환으로 예산절감 및 전력증강을 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