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中·日서도 못찾은 신석기 밭, 강원 고성(문암리 유적)서 찾아

신석기시대 중기인 5000년 전 한반도에서 농사가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밭 유적이 강원도 고성 문암리 유적(사적 426호)에서 발굴됐다. 신석기시대 밭 유적은 중국·일본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어 학계에서는 문암리가 동아시아 농경사의 비밀을 캐는 열쇠가 될 것으로 주목하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영원)는 26일 문암리 발굴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랑과 고랑을 갖춘 신석기시대 중기의 밭 유적 1000㎡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밭 유적은 이랑 너비 45~150㎝, 고랑 너비 40~87㎝, 고랑 높이 13~15㎝ 규모다. 현장에서 본 밭 유적 동쪽 중앙부는 이랑이 나란히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습이고, 나머지 밭은 모양이 제각각으로 일정하지 않았다. 밭 유적 주변에선 탄화(炭化)된 조(粟) 1점도 출토됐다.

발굴단은 밭 유적을 파고 들어간 집자리 1기에서 신석기시대 중기 유물인 빗살무늬토기 조각 4점을 수습하면서 밭 유적이 신석기시대 중기 유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밭 안에서도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돌화살촉 1점을 발굴했다. 밭 유적 토양을 시료로 분석한 결과도 5000년 전 것으로 드러났다.

발굴을 맡은 문화재연구소 홍형우 학예연구관은 "이랑과 고랑을 갖춘 밭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신석기인들이 화전(火田)이나 씨를 뿌리는 정도의 초보적 농경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농사를 짓는 본격적 농경단계에 들어갔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발굴단은 좁은 면적에서 다양한 모습의 이랑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조·기장을 비롯한 다양한 작물을 함께 심었을 가능성도 추정하고 있다.

◇한반도, 농경 언제 시작됐을까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한반도 신석기 시대 농경 시작에 대해선 ▲신석기시대 초기설 ▲청동기시대설▲신석기전기 시작+청동기시대 본격화설 등 세 가지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보통은 신석기시대에 괭이나 보습, 뒤지개 등 농사용 석기와 조·기장 등 탄화 곡물이 발굴된 것을 근거로 이즈음 농경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해왔다. 이번 문암리 밭 유적 발견으로 최소한 신석기시대 중기인 5000~5600년 전에 본격적 농경이 시작됐다는 물증을 확보하게 됐다. 중국은 신석기 전기부터 농경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밭이 확인되지 않아 화전이나 씨뿌리기 정도의 초보적 단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도 신석기시대 말 또는 청동기시대에 농경이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사시대 농경, 뭘 심었나

신석기시대 농경 작물은 조와 기장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청동기시대 전기에 들어오면 콩과 벼, 맥류가 추가되고, 후기에 들면 팥이 보편적으로 재배됐다. 이밖에 복숭아·박·들깨가 재배됐으며, 대마도 재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꼽히고 있다. 청동기시대 밭 유적은 경남 진주 대평리와 경북 청도 송읍리, 대구 동호동 등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