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TALK] 자연 다큐의 징크스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는 PD들 사이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속설(俗說)이 하나 있다. '찍는 대상의 몸집이 클수록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것. 한 지상파 교양국 다큐멘터리 PD는 "입사할 때부터 들은 얘기"라고 했다. "곤충보단 조류, 조류보단 포유류가 인기가 높다고들 한다. 그래서 다들 기왕이면 사자·곰·코끼리·표범·고릴라 찍으라고 농담한다. 참새나 종달새처럼 작은 새는 찍지 말라고 하고…."(웃음)

최근 방영된 EBS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흰꼬리수리'를 찍은 김동관 PD도 "그런 속설이 있다"고 했다. "새 중에서도 육식성의 사나운 조류인 맹금류를 찍을 때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편이죠. 식물보단 동물, 동물 중에서도 덩치가 크고 움직임이 화려한 동물이 인기가 많아요. 기획 아이템을 잡을 때도 이런 점을 아예 무시하진 못하죠."

이유가 뭘까. 많은 다큐멘터리 PD는 "덩치가 큰 동물일수록 사람과 비슷한 행동과 표정을 더 많이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방송의 본질은 사람이다. 자연 다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동물이라도 '내 얘기 같다'는 느낌을 준다면 시청률이 높게 나온다. 독수리·참매·흰꼬리수리 같은 거대한 새는 작은 새들과 달리 얼굴에도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눈빛만 봐도 화났는지 지쳤는지 알 수 있다. 시청자는 그런 표정을 보면서 '저들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 다큐멘터리의 생명은 '공감(共感)'에 있고, 이런 공감을 이끌어 내기엔 사람에 가깝게 보이는 몸집 큰 동물이 상대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동물의 건축술'을 만든 KBS 배용화 PD도 "동식물에서 사람과 비슷한 면모를 뽑아낼 때 시청률이 가장 잘 나온다"고 했다. "새끼를 잃고 헤매는 모습, 암컷 하나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처럼 사람과 흡사한 장면이 있으면 시청률이 뛰어오른다."

그럼 작은 곤충을 찍은 다큐멘터리는 대개 실패하는걸까? 배 PD는 "꼭 그렇진 않다"며 "연결고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흰개미를 찍어도 개미가 만든 집과 사람이 지어낸 건축물 사이의 유사점을 보여주는 식이다.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눈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