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리더십] "해외 나간 대기업, 외국은행 지분 10% 사면 큰 힘 될 것"

◇대기업, 외국계 은행 지분 인수해야

―2년 전 취임할 때 성과주의 도입을 강조했는데, 별 성과가 없는 것 같다.

"임금 체계 측면에선 한 게 없다. (전임 임원진이 노조와 맺은) 계약이 있다. 그걸 파기할 수가 없다. 하나 달라진 것은 민병덕 국민은행장이 올해 발탁 인사를 도입한 것이다. 승진하는 데 3년 걸리던 것을 2년 만에 올라갈 수 있게 했다. 10% 가까이 발탁 인사를 했다. 간접적인 성과주의라고 할 수 있다."

―KB의 가장 큰 문제점은 외풍에 휘둘리는 지배구조라고들 한다.

"2년 동안 구조 조정, 경영 개선, 리스크 축소를 했는데, 내가 한 일 중 가장 큰 일은 정치권, 정부로부터 독립을 지켰다는 것이다. 인사 청탁이 제로(0)였다. 금융위나 금감원, 청와대로부터 전화 한 통 없었다. KB 역사상 처음일 거다."

―우리나라 은행산업의 문제는 뭔가.

"지난 30년 동안 가장 성장하지 못한 산업이 은행산업이다.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현재 국내 은행이 대기업에 대한 금융 서비스를 못 하고 있다. 이유는 두가지다. 1998년 외환 위기 때 상장 기업 부채 비율이 자기자본의 400%였다. 그게 지금 130%로 줄었다. 대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수요 자체가 없다. 둘째는 대기업 매출의 반이 해외에서 일어나는데, 해외 비즈니스에 (우리 금융회사들이) 서비스를 해 줄 수 없다는 거다."

―국내 은행은 왜 못하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는 미국, 중국, 터키 등에 공장이 있다. 공장 운전자금이 어디에선 남고 또 어디선 부족한데, 운전자금을 한곳으로 모아서 돈을 뿌려주는 기능을 은행을 통해 해야 한다. 그런데 국내 은행 중에는 미국, 상하이, 이스탄불에 지점을 다 가진 곳이 없다. 이런 업무가 가능하려면 은행이 대형화돼야 한다. 둘째 이유는 한국계 은행과 삼성이 신용도는 같은데 (외국에서 돈을) 삼성이 더 싸게 돈을 빌린다. 지명도와 규모가 은행보다 낫기 때문이다. 은행이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까 M&A(기업 인수합병)로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 그런데 돈은 어떻게 만들어 내나? 금산(金産)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금지) 원칙이 있어서 안 된다. 나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기업 총수를 불러 모아서 '금산분리 규제가 있으니까 국내 은행 주식을 사지 말고 외국계 은행 지분을 10% 사서 경쟁력을 키우라'고 권장하면 좋겠다. 현대자동차가 외국에 진출하는 예를 들어 보자. 사업이 잘되려면 자동차 금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걸 뒷받침해줄 수 있는 한국 금융기관이 없다. 그렇다면 외국 금융기관이라도 그런 서비스를 해줘야 하는데, 외국 금융기관에 우리 기업은 1순위가 아니다. 따라서 예컨대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주식 10% 사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제대로 서비스를 해 줄 것 아닌가. 내가 국민은행 CEO지만, 제발 그렇게라도 해서 우리가 못 하고 있는 서비스를 국내 기업에 제공하게 해주면 좋겠다."

◇한국 경제, 기업가 정신 부재(不在)가 더 문제

어 회장은 "국내 은행이 아시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년 전에 비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줄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중국계 은행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은행보다 사이즈가 작아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스탠다드은행은 아프리카 전역에 지점이 다 들어가 있다. 그런 은행에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의 아프리카 진출에 큰 도움이 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가계 부채도 심각하지만 그보다 기업가 정신을 죽이는 게 더 문제다. 사회적으로 빈부 격차가 이슈가 되는데, 그렇다고 해도 재벌 집단에 대한 반감이 너무 크다. 선진국에는 그게 없다. 미국에선 포드 록펠러 등 거대 기업에 대한 반감 문제가 100년 전에 해결됐다. 유럽에서도 덴마크만 하더라도 전체 시가총액의 30%가량을 차지하는 상선(商船)회사 머스크(Maersk)가 제일 큰 은행을 갖고 있다. 하지만 덴마크 국민은 머스크에 대한 적대감이 전혀 없다. 지난 40~50년 동안 머스크 재단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해서 그런 거다."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는데 제일 어려웠던 고비는 언제였나.

"내 능력보다 큰 일을 맡았을 때다. 고려대 총장이 됐을 때, 3개월 동안 매일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 고대는 잘됐다. 내가 총장이 됐으니까'라며 자기 최면을 걸었다. KB 회장직도 굉장히 각오를 가지고 하고 있다."

 

북한산 자락에 있는 약속 장소인 부암동 J손만두집에 10분 일찍 도착했는데, 어윤대(67) KB금융지주 회장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식당 주인에게 부탁해 특별히 3층 독방을 잡아 놨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점은 삼청동 수제비집이에요.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가는데, 거긴 시끄러워 이곳으로 정했어요. 집(부암동)에서 가깝고 지금 식당을 운영하는 창업주 손녀딸이 와이프(이화여대 교수) 학교 동문이라 여기도 자주 옵니다."

그는 메뉴에 익숙한 듯 곧장 종업원을 불러 모음 손만두와 만두전골, 막걸리를 주문했다. 종업원이 한 상 가득 만두 요리를 차리자마자 곧장 질문지를 펼쳤다.

―유럽 위기는 언제까지 갈 것 같은가.

"(이번 위기는) 굉장히 만성(慢性)이다. 오래간다. 얼마 전 국제회의에서 스페인에서 둘째로 큰 은행(BBVA)회장이 '우리 정부에서 해결할 수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틀 뒤에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이) 터졌다. 예측 불허의 상황이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에 만난 미국의 큰 은행 회장은 유럽 위기가 끝나고 나면 미국으로 위기가 돌아올 거라고 보더라."

―글로벌 경제 위기는 언제쯤 해결되나.

"세계 수요가 다시 생겨나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미국의 주택 경기가 정상화되어야 한다."

―한국도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가계 부채발 금융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선진국과 다른 면이 있다. 우선 2007년에 도입된 LTV(주택 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가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의 은행 경영진에게 우리나라 은행은 주택 담보가치의 평균 60% 정도만 대출해 줬다고 말하면 깜짝 놀란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제도도 안전판 역할을 한다. 전세보증금은 일종의 강제저축이라서 이를 감안하면 가계의 실질적인 부채 비율은 대폭 떨어진다."

―곧 매물로 나오는 우리금융지주 입찰에 KB지주도 참여하나.

"내부적으로 이 문제로 회의를 한 적은 없지만 관심은 갖고 있다. 그런데 2가지 변수에 대한 판단이 서야 (입찰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첫째는 합병 후 정부가 일부 지분을 계속 갖고 주주권을 행사하느냐다. 이런 구도는 KB금융지주 65% 지분을 갖고 있는 외국인 주주들이 싫어한다. 아마 주식을 투매할 거다. 둘째 변수는 합병 시너지가 있어 주주 가치를 올릴 수 있느냐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입찰 참여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참여한다면 인수 자금 조달은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