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서울서 할리우드 영화 '본 시리즈' 4편 찍었다?

할리우드 톱스타 맷 데이먼의 연작 액션시리즈로 유명한 '본 시리즈'의 네 번째 편 '본 레거시'(9월 개봉 예정)의 예고편이 최근 공개되자 한국의 네티즌과 영화팬들이 술렁였다. 한국어 간판이 내걸린 유흥가와 서울의 지하철로 보이는 장면이 짧게 들어가 있는 걸 보고서다. 인터넷 등에서는 지난해 영화배우 박중훈이 "할리우드 지인으로부터 '본 레거시'를 서울서 찍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트위터에 썼던 일과 연관지어 "영화 속에 서울이 등장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들이 돌기 시작했다. 영화 팬들의 '추측'은 사실로 확인됐다. 서울 영상위원회가 "'본 레거시' 제작진이 지난해 서울 강남역 일대와 지하철 9호선에서 이틀간 촬영했고 이를 영상위가 지원했다"고 밝힌 것. 서울영상위 해외사업팀의 정연주 팀장은 "할리우드 영화에 서울이 등장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서울은 지금까지 도쿄나 베이징·상하이 등 다른 동아시아 대도시보다 영화 속에서 노출이 덜 됐다는 점이 '본 레거시' 제작진에게는 오히려 매력적이었던 듯하다"고 했다.

서울이 외국 영화계의 매력적인 촬영지로 떠올랐다. 이는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된다. 서울영상위가 촬영지 섭외, 교통 통제 등 행정적으로 해외 작품의 촬영을 지원한 작품 수가 2008년 10편에서 지난해 24편으로 두배 이상 늘어났다. 서울에서 촬영하는 해외 제작물과 공동 제작물에 대해 인건비·숙식비 등 서울에서 쓴 제작비용의 25％(최대 1억원)까지 환급해 주는 '인센티브제도' 적용 작품도 같은 기간 5편에서 10편으로 증가했다. 올해 6월 현재 인센티브지원이 확정된 외국 영화는 5편이다.

서울영상위에 따르면 한류 열풍이 불면서 2000년대 말 동남아시아 영화·드라마를 중심으로 서울에서 촬영하는 작품들이 늘기 시작했고, 대부분 흥행에도 성공했다. 실제 2006~2007년 서울영상위의 지원을 받은 작품들은 대부분 영미권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나 한국과 외국이 합작한 저예산 영화들이었으나 2009년부터는 동남아 국가들의 영화·드라마로 바뀌었다. 대표적인 예가 2009년 서울에서 90％ 이상 촬영한 태국 영화 '헬로 스트레인저'. 이 영화는 2010년 태국 박스오피스 3위를 차지했다. 태국 청춘남녀가 서울 관광길에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로맨틱 코미디로 명동, 덕수궁 길, 북촌 한옥마을, 남산 공원, 광장시장 등 서울의 명소들이 다수 등장한다. 당시 영화 홍보를 위해 내놓은 400여명분의 서울 여행 상품이 개봉 일주일 만에 매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서울에서 80~90％ 이상의 장면을 찍은 필리핀 영화 '키미도라 앤 템플 오브 키에미'와 말레이시아 영화 '아쿠 아다, 카우 아다'가 각각 자국 박스오피스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말레이시아 유학생을 다룬 '아쿠 아다, 카우 아다'에선 경희대가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서울이 진정한 세계 영화계의 촬영중심지로 평가받으려면 세계 관객을 타깃으로 삼는 할리우드나 유럽 영화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데 도쿄의 시부야 거리, 베이징의 자금성이나 만리장성처럼 상징적인 이미지가 없어 베이징이나 도쿄에 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연주 팀장은 "올 초 할리우드 영화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서울 투어를 실시했는데 이들은 화려하고 현대적인 강남보다는 종로나 삼청동처럼 서울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남아 있는 곳을 더 좋아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 영화제작지원을 요청할 때 대부분 나홍진 감독의 영화 '추격자'에서 추격신이 벌어지는 서울의 골목길 같은 곳을 원한다"면서 "서울의 재개발·현대화 속도가 빠른 것이 오히려 외국영화 촬영을 유치하는 데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아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