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동인문학상] 도시 비집고, 삶의 숨통 찾는 유쾌한 작가

삶과 소설을 유쾌한 놀이로 만드는 '유희적 작가' 김중혁(41)이 2012 동인문학상 6월 독회의 주인공이 됐다. 작품은 단편집 '1F/B1(1층/지하 1층·문학동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유종호·김화영·오정희·정과리·신경숙·김동식·김대산)는 제7차 심사독회를 갖고 이 작품을 올해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으로 올렸다.

바늘로 찔러도 틈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은 2012년의 세속도시에도 틈은 있다. 김중혁의 '1F/B1(1층/지하 1층·문학동네)'은 그 틈을 장난꾸러기 소년의 심정으로 발굴한다. 마치 암호 같은 제목의 단편 'C1+y=:[8]:'은 도시의 뒷골목에 낙서를 하고 다니는 스케이트보더들이 등장한다. 제목은 '시티는 스케이트보드'라는 뜻의 시각적 구현.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는 두 개의 발을 :[8]:로 표현하고, 도시와 스케이트보드 사이에 있는 '='의 속도감이 보기 좋다고 능청을 떤다. 단편 '냇가로 나와'에서는 뗏목의 효용을 새롭게 찾아내고, '바질'에서는 벽을 타고 집 창문까지 덮어버린 덩굴을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하며, 표제작 '1F/B1'에서는 1층과 지하 1층 사이의 틈(/)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도시의 숨은 틈에는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이 있다.

심사위원들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삶에 대한 긍정과 연민을 이끌어내는 이 작가의 재능에 주목했다. "콘크리트로 덮여 있는 현실의 도시를 비집고 숨어 있는 삶의 구멍, 삶의 숨통을 찾아내고 있다" "세상의 난제를 즐겁게 극복하고 있는 점이 매력" "도시가 만들었지만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빈 공간들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발견을 통해 도시의 새로운 경신 가능성, 삶의 경신 가능성을 찾아내고 있다" "아날로그적 감각을 촌스럽지 않고 감각적인 문장으로 표출" 등의 호평이 있었다.

심사위원들의 아쉬움은 '익숙한 구도'가 주는 긴장의 이완에 있었다. 대부분의 소설이 세 가지 요소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 세 요소는 하나의 장소, 그 장소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그 장소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는 사람들. 한 심사위원은 "이 세 요소의 운동관계가 김중혁 소설의 핵심포인트"라면서 '냇가로 나와'같은 작품은 감동적이었지만, 어느 단편은 억지로 꿰맞췄다는 느낌이 들 만큼 도식적이었다"고 비판했다.

또 "작품들의 편차가 있다"는 지적도 일부 있었지만, 해학과 페이소스로 도시적 삶의 소통가능성을 찾아내는 이 작가의 시도에는 심사위원 모두가 지지를 보냈다.

이 외에 심사위원들은 권여선의 장편 '레가토'(창비)와 고은규의 장편 '데스케어 주식회사'(뿔)를 검토했다. 각각 "80년대와 현재가 문학적으로든 의미론적으로든 연결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신념을 읽을 수 있었다" "죽음 이후의 사후처리를 다룬 발상이 흥미로웠다" 등의 평가를 받았지만, 다음 작품을 기대해보기로 했다.

[소수의견 권여선 '레가토'] 반지하 서클룸의 젊은 시절… 엉거주춤 멜로로 읽힐 우려

권여선의 '레가토'는 1980년대 반지하 서클룸 '카타콤'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인물들의 이야기다. 감상 포인트는 오늘날 1980년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또는 후일담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가이다. 1980년대 대학을 다녔고 등단 후 정밀한 문체로 삶의 세밀한 표정을 묘사해 왔던 권여선이라면 더더욱 그러한 기대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입장에서 '레가토'는 언젠가 한 번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기존 후일담 소설의 문법을 반복적으로 승인하고 있는 이야기 또는 지난 시절에 대한 낭만화로 귀결되는 엉거주춤한 멜로드라마로 읽힐 수도 있다. 오늘날 1980년대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매우 첨예하게 다층화되어 있으며, 한국현대사에서 1980년대의 역사적 의미를 성찰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다. 작품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큰 이유이기도 하다.

[수상자 새 소설] 은희경 '태연한 인생'… 삶 움직이는 양날의 칼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은 인간의 삶을 움직이는 양날의 칼이 무엇인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 양날의 칼은 귀중한 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으며, 건설적인 만큼이나 파괴적일 수 있다. 그것은 소설 속에서 '개인의 고유성'이란 말로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은희경은 지속적으로 자신을 알려오고 있지만 그 정체가 여전히 불분명한 자아(ego)라는 것의 중요성을, 주인공 작가의 자의식을 통하여 전면에 부각시킨다. 거기서 자아는 집단성, 일반성에서 벗어나려는 강력한 의지를 지닌 개인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자아의 칼은 부정적인 집단성을 절단하면서 긍정적인 관계성마저 절단할 수 있다. 은희경의 소설은 그렇게 자기를 정립하는 활동을 통해 집단의식과 절연한 개인에게 가능한 새로운 관계성이란 어떤 것인지를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