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자원 리튬 海水서 채취… 5년 내 대량생산

해돋이 명소 정동진에서 남쪽으로 4~5㎞ 떨어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 인적 드문 바닷가에 '사진 촬영 금지' 푯말이 붙은 1급 국가 연구시설이 있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해수리튬연구센터'다. 바닷물에서 리튬을 생산한다는 원대한 목표로 설립된 곳으로 일본에 이은 전 세계 두 번째 해수(海水)리튬 연구소다. 정부와 포스코가 300억원을 투자한 이 연구센터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정강섭(52) 박사의 '10년 뚝심'의 산물이기도 하다.

정 박사는 2009년 해수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바닷물에서 리튬만 걸러내는 일종의 '체'를 만든 것이다. 그는 리튬과 망간을 섞어 리튬망간산화물을 만든 뒤 리튬만 녹여냈다. 리튬이 있던 자리가 숭숭 뚫리면서 체와 같은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체를 바닷물에 넣어 휘젓자 리튬보다 큰 원소들은 튕겨 나가고 리튬만 속속 걸려들었다. 화학 처리를 통해 리튬을 뽑아내자 고순도의 탄산리튬이 만들어졌다.

그가 만든 흡착제는 일본 것보다 30%나 효율이 좋았다. 리튬 흡착제는 지름 10㎛(10만분의 1m)의 분말. 바닷물에 그냥 넣으면 휩쓸려 사라진다. 정 박사는 흡착제 분말을 미세한 막 안에 넣는 '티백' 방식을 개발했다. 흡착제 분말과 플라스틱(PVC)과 섞어 구슬 형태로 만든 뒤 망에 넣어 사용하는 일본 방식에 비해 바닷물 투과율이 높아 흡착이 잘 되고 환경 보호면에서도 탁월했다.

세계 리튬 소비량의 80%는 볼리비아나 칠레 등 남미 소금호수에서 생산된다. 리튬이 녹아 있는 염호(鹽湖)의 물을 자연 증발시킨 뒤 정제하는 방식이라 생산에 1~2년씩 걸린다. 지금은 18만t선에서 국제적으로 수급이 맞지만 수요가 급증하면 가격이 폭등하는 구조다. 이를 미리 내다본 일본의 산업기술총합연구소는 1980년대부터 바닷물 1L당 0.17㎎의 비율로 녹아 있는 리튬을 추출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정 박사는 지난 2000년 우연히 일본의 논문을 읽고 추격 연구를 시작했다. 한국에선 리튬이 뭔지도 모를 때였다. 일본의 긴 안목에 충격을 받은 그는 해양수산부(당시)를 찾아가 "바닷물에서 리튬을 뽑는 연구를 하겠다. 일본은 벌써 20년을 앞서가고 있다"고 설득해 첫 연구비 5000만원을 따냈다. 2009년 성공할 때까지 만 10년간 연구비가 끊길 뻔한 위기도 2~3차례 있었다. 일본도 상업화에 성공하지 못한 가망 없는 연구라며 '21세기 봉이 김선달'이라고 그를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있었다. 실제로 일본이 시험 생산한 리튬은 수입가의 3배나 될 만큼 고가였다.

정 박사의 10년 뚝심은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리튬 가격이 오르면서 해수리튬의 채산성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일본 미쓰비시는 2020년 최대 178만t의 리튬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만큼 가격이 올라 시장 규모도 200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정 박사는 해수리튬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포스코에 기술 이전을 하고 그가 받은 기술료가 13억1500만원. 지난 3년간 대학과 공공연구기관을 통틀어 최고 액수였다. 그는 올해 10월 육지에서 500m 떨어진 옥계 앞바다에 가로 55m, 세로 18m 규모의 리튬 흡·탈착 시설을 띄워 본격적인 상업생산 연구에 착수한다. 앞으로 5년 안에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성균관대에서 화학과 무기화학으로 학·석·박사를 모두 마친 토종박사인 그는 "지구상 바다에 녹아 있는 리튬의 양은 2300억t"이라며 "무한대의 리튬 광산을 우리 것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리튬

전기차·노트북·휴대폰용 2차 배터리와 차세대 핵융합발전, 항공기용 특수경량합금 등에 쓰이는 핵심원료. 남미의 볼리비아가 전 세계 매장량의 50%를 차지할 만큼 부존량이 편중된 '전략자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