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酒暴 청소년, 사람 되다

아픈 건 청춘만이 아니다. 청소년 사건을 처리하고 나면 나 역시 항상 가슴이 무겁다. 파출소 전화벨이 울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박인호(가명)의 아비 되는 사람입니다. 오늘 찾아뵙고 싶은데요." "박인호라고요?" "예, 저…. 지난번 공무집행방해죄로 경찰서까지 갔던…."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올해 초 어느 날 초저녁이었다. "개포동 5단지 상가 앞에서 젊은 애들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현장에 도착하자 난투극을 벌였다는 일행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덩치가 큰 십대 두 명이 서로 멱살을 붙잡고 있었다. 만취한 이들 중 한 명은 맥주병을 쥐고 있었다. 그 아이가 인호였다. 인호는 술병째로 벌컥벌컥 들이마시면서 "×팔, 경찰이면 다야!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라며 건물이 날아갈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다른 아이의 입에서 "우린 중학교 중퇴생"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대충 주위를 살펴보니 20여명은 돼 보였다. 마치 경찰이 씨름선수 같은 청소년 두 명을 어떻게 제압하는지 지켜보려는 것 같았다.

"쯧쯧…." 누군가 혀를 찼다. 아이들이라고는 해도 키가 185㎝, 몸무게는 90㎏ 이상은 돼 보였다.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이들과 힘으로 맞선다면 결코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급하게 무전으로 지원을 부탁하고 인호를 진정시키며 사건 경위를 물었더니, 대뜸 "짭새 새×들이 ×랄이야"라며 출동한 동료와 몸싸움을 시작했다. 한 구경꾼은 "경찰도 못해먹을 일이다"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는 수갑을 채우려고 했지만 버거웠고, 지원 나온 동료까지 합세해서 한참만에야 그들을 제압했다. 솔직히 경찰 장비인 '테이저 건'을 사용하면 한방에 끝낼 수도 있었다. 당연히 생명에 지장이 없는 전자 충격 총이다. 하지만 몇 번을 망설였으나 빼들지 못했다. '10대이지 않은가? 보는 사람들도 있고…. 조폭들에게나 사용해야 할 장비를 여기서 써서야 되겠나?'

동료는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경찰 정복 상의가 찢어지고 넥타이와 단추가 떨어져 나갔다. 나도 새끼손가락 하나가 뒤로 젖혀져 순식간에 시퍼렇게 부어올랐다. 이들을 체포해 파출소로 동행했다. 들어올려진 윗옷 사이로 얼핏 글자를 가득 새긴 문신이 보였다. 흥분한 어떤 사람은 현장 상황을 진술하겠다며 전화번호를 적어줬고, 가게 주인은 유리문이 부서졌다고 하소연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기는커녕 오히려 파출소에 와서도 더 심한 욕설을 하며 행패를 부렸다.

그 아이들은 흔히 말하는 '일진(一陣)'이었다. 계속 친구들을 괴롭히는 학교 폭력을 저지르다가 여러 번 문제가 불거져서 6개월 전에 자퇴했다고 했다. 이들의 언행으로 보아 그 뒤로 술 마시고 사고를 치다 경찰서를 수도 없이 드나든 것 같았다. 그날도 한 명당 소주 두 병에 맥주 피처잔을 다 비웠고, 왜 길거리에서 싸웠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결국 이들을 입건해 경찰서 청소년계로 인계했다. 며칠 뒤 부모와 함께 파출소로 찾아온 아이들은 A4용지 앞뒤로 빽빽하게 반성문을 써서 내게 줬다. 그래도 또 사고를 치지 않을 거라고는 믿기 어려운 노릇이었지만, 어쨌든 그것으로 인호는 풀려났다.

몇달 만에 아들을 데리고 다시 파출소에 온 인호 아버지에게서 인호가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난번 사건 이후 인호 아버지는 아들을 붙들고 "내가 지금껏 일에 바빠서 너한테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해 이 지경까지 이르렀구나. 난 애비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며 통곡했다고 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본 인호는 눈을 크게 뜨고 멀뚱멀뚱 바라봤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붙잡고 거의 매일 산을 올랐다. "저 아래를 봐라.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허구한 날 말썽만 일으키는 골칫덩이가 될래? 아니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테냐?"

인호가 천성이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인호는 아버지 손을 붙잡고 울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고는 "반드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진학해서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그새 몸무게가 10㎏가 넘게 빠진 인호는 갑자기 뒤로 돌아 윗도리를 올리더니 하얀 맨살을 보였다. 문신이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체대(體大)에 가서 국가대표 선수가 될 거예요. 술도 끊고 담배도 끊었어요. …이제는 공부와 운동만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암, 몸무게를 줄일 만큼 강한 정신력이면 무슨 일이든 못할 것이 없지!" 내 입에서 저절로 칭찬이 나왔다. 이 세상에 완전하고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누구든 실수를 저지른다. 그것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다시는 서로 얼굴을 붉히며 만나지 않기로 약속하고 돌아서는 인호의 뒷모습이 밝았다.

청소년 음주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범죄도 흉포해지고 있다. 늦었지만 학교 폭력에 경찰이 적극 대응하기 시작했다. 인성교육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의 폭력이 과연 사라질지는 의문이 들지만, 인호 같은 아이들이 있기에 결코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