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랑 경포대 해수욕장 갔다가 '입이 쩍'

동해안을 대표하는 강원도 강릉 경포해수욕장이 해안침식으로 위협받고 있다.

1일 오후 경포해수욕장 남쪽 끝. 이날 동해안 파도는 평소처럼 잔잔했지만 약한 파도에도 백사장이 위태롭게 보일 만큼 침식이 진행돼 있었다. 오는 13일 개장을 앞둔 경포해수욕장 남단 백사장 150여m가 최근 한 달 만에 사라졌다. 경포해변 1.8㎞의 10%에 육박하는 길이다. 부채꼴 모양으로 침식돼, 심한 곳은 폭 30m 이상이 쓸려나갔다. 침식 때문에 백사장은 높이 1~2m의 '모래 절벽'을 이뤘다. 모래 절벽은 밤에 사람이 떨어져서 다칠 수도 있을 정도의 깊이였다.

침식이 진행되면서 산책을 위해 해변에 설치한 목재(木材) 산책로와 무너진 모래 절벽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곳은 1m 정도에 불과했다. 주민들은 "계속 침식이 진행되면 곧 목재 산책로가 파도에 휩쓸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목재 산책로 다음에는 도로와 상가가 있다. 경포와 함께 강원 고성 용천해변과 양양 오산해변 등도 침식이 진행 중이다.

◇파도의 변화

강릉시와 주민들에 따르면 이 일대에서 20일 전쯤부터 예전에 보지 못하던 높은 파도가 계속 일었다. 이 때문에 백사장 폭이 가장 좁고 약했던 경포해수욕장 남단이 쓸려나갔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경포 인근 강문해변에서 해안침식을 막기 위해 지난해부터 침식방지 공사를 했다"며 "이 때문에 해류가 바뀌어 모래가 쓸려나간 것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강릉시는 공사의 영향은 아니라고 봤다. 강문해변 침식방지 공사는 침식이 진행된 해변에 테트라포드(TTP) 일명 '삼발이'를 설치해 파도의 세기를 줄여 침식을 막는 것으로 해류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해안침식 계속되나

강원대 해양건설시스템공학과 김인호 교수는 이날 경포 주변을 직접 둘러보며 원인을 살폈다. 그는 "인위적인 조건 변화에 따른 침식은 아닌 것 같다"며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고파랑의 영향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기온 상승으로 해수면이 높아지는 등 바다 환경의 변화로 높은 파도가 생겼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백사장이 이상 파랑에 어느 정도는 버텼지만, 결국 파도가 같은 곳을 반복적으로 때리면서 순식간에 백사장이 씻겨 내려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경포뿐 아니라 동해안 고성·양양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과학적으로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릉시는 올해 해수욕장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일단 주변 모래를 침식된 곳에 메우는 작업을 추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