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새, 가마 속에서 되살아나다

"제가 죽은 새의 제사를 지내드릴게요."

설치미술 작가 서민정(40)은 지난 3월 전국 조류농장 10여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조류농장에서 매일 죽어나가는 새는 수십 마리, 대개 그냥 소각된다. 서민정은 아이스박스를 들고 서울·안산·고성 등의 조류농장을 다니며 잉꼬·앵무·카나리아 등의 사체(死體) 100여구를 수집했다.

13일까지 서울 원서동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리는 서민정 개인전 'Fired White(불에 구운 흰색)'엔 도예 기법으로 화장(火葬)한 새 70여 점이 전시됐다. 작품 'The Remains(유해)'는 제단(祭壇)을 연상시키는 시멘트 단 위에 흰색 도자기 새들을 늘어놓은 것. 속이 텅 빈 도자기 새는 모형처럼 보이지만 사실 새 사체에 백자액을 입히고 가마에 넣어 800도와 1200도에서 두 번 구운 것이다. 도자기 굽는 공정과 똑같은 17시간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새 몸뚱이는 모두 타 없어지고 백자 껍데기만 남는다.

왜 하필 '죽은 새'로 작업했을까? 서민정은 "12년 전 키우던 잉꼬가 죽었을 때, 땅에 묻고 나서 후회했다. 죽은 생명체가 남겨진 이들에게 기억 하나쯤은 두고 갔으면 하는 생각에서 살아있을 때의 부피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작업을 선택했다"고 했다. 새가 하얀 도자기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소멸과 재생의 상징이기도 하다.

전시에는 작업과정을 담은 영상물, 죽은 새 44마리의 '영정(影幀)'을 그린 수채화 드로잉도 나왔다.

홍익대와 일본 다마미술대학에서 판화,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한 서민정은 2008년 도자기로 웨딩 드레스를 만들었다. 깨지기 쉬운 결혼에 대한 환상을 표현한 것. 전시 후, 갤러리 측이 작품 운송 비용을 못 주겠다고 하자 그는 바게트 빵으로 도자기 드레스를 때려 부수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찍었다. "가난한 예술가는 살아남기 위해 작품보다 '빵'을 택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해 국내 개인전에선 영등포 집창촌 건물을 흰색 스티로폼으로 재현해 화제가 됐다.

"금기를 깨뜨려 주목받고 싶은가" 물었다. "집창촌 작업을 흰색 성전(聖殿)처럼 만들었다. 그 작업이 집창촌을 모델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홍등(紅燈)을 켜는 건 관람객이다. 금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란 얼마나 편협한가." (02)760-4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