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52] 新式결혼식, 초기부터 '호화' 논란

1935년 12월 10일 경성 한복판에 1800석의 공연장 부민관(府民館·현재 서울시의회 건물)이 문 열자 의외의 '고객'들이 몰렸다. 신식 결혼식을 올리려는 남녀들이었다. 1937년 1월부터 6월까지 부민관에서 음악·무용 공연은 63회, 연극은 55회 공연됐는데 결혼식은 134회나 열렸다. 거의 하루 한 번꼴이었다. 조선일보는 이 공연장이 '화촉(華燭)의 전당'이 됐다고 제목을 달았다(1937년 7월 28일자) .

1920년대 중·후반부터 급속히 늘고 있던 신식 결혼식의 장소로 부민관은 최적이었다. 집에서 올리는 전통 혼례는 싫지만 신자도 아닌데 교회 결혼식 하기가 부담스럽던 '모던 뽀이''모던 걸'들에게 공공장소의 결혼식은 새로운 대안이었다. 주례를 모시고 면사포 쓰고 서양식 예복 입고 하는 이런 결혼식을 '사회식 결혼'이라 불렀다(1940년 1월 5일자).'예식장 결혼'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930년대에는 경성 곳곳에 결혼식 전문 공간인 '예식부'들까지 들어섰다. 1940년 경성 시내엔 예식부가 10여곳쯤 됐다. 낙원동 '문명예식부'의 주인은 '한 50, 60원(약 120만원)만 들이면 신부를 웬만큼 꾸밀수 있지요. …면사포 한 번 세내는 데 15원(약 30만원), 흰 구두는 대여료가 50전(1만원)'이라며 '세상 참 편리해졌습니다'라고 했다(1940년 4월 5일자).

초기 신식 결혼식의 순서를 보면 '주례의 식사(式辭)''신랑·신부 경례''예물 교환''신랑·신부 약력 보고'뿐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손님의 축사'와 '신랑·신부 측 답사'도 포함돼 있었다(1934년 12월 13일자). 처음엔 손님에게 다과 정도만 접대하는 일도 많았는데, 하객들은 '차만 먹는 건 너무 안됐다''과자만 줘서 돌려보내는 건 더 안됐다'고 불만을 터뜨렸다('여성'1937년 5월호).

요릿집에서 피로연을 여는 풍조가 번지자 '고리대금을 어더 굉장한 혼례식을 지내고 몃해 동안 그 돈을 갚기에 몰두하는' 폐단이 있다며 피로연을 없애자는 주장도 대두됐다(1927년 6월 29일자). 조선일보 자매지인 '여성'지의 좌담회에서 당시 27세의 시인 모윤숙(毛允淑)이 '현대식(결혼)이 활기는 잇어보인다'고 하자 25세 시인 노천명(盧天命)이 '그래도 우리 냄새나는 것이 낫죠'라고 맞서며 전통 혼례식을 옹호했다('여성' 1937년 5월호). '주례하는 사람이 점잔치 안흐면 꼭 어린애 작난 같다'는 비판도 있었다(1940년 1월 5일자). 그래도 시대의 대세는 이미 기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