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한국 사는 일본인 "결혼 때 현금을? 재수 없어"

다 큰 자녀가 부모 노후 자금을 헐어 결혼하는 걸 한국인 대다수가 당연하게 여긴다. 이런 결혼 관습이 외국인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본지 취재팀이 서울에 사는 외국 직장인들을 만나 "당신네 나라에서도 남자는 집을 마련하고 여자는 고액 예단을 보내느냐"고 묻자, 하나같이 "그렇게는 안 한다"고 했다. 서울이 집값 비싸다고 하지만, 뉴욕·파리·도쿄 같은 외국 도시도 만만치않다.

하지만 아들 가진 부모가 살던 집 담보로 잡혀 아들 전세 얻어주고, 그 대가로 딸 가진 부모가 대출받아 사돈에게 명품 사주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양가에 현금이 오간다고요?"

영국인 레지널드 불(54) 두산GHR 팀장은 "한국에선 신부 집에서 신랑 집으로 현금을 보낸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신부가 지참금 가져가는 풍습은 영국에선 역사책에 나오는 옛날 얘기다. 결혼 당사자와 지인들이 마음이 담긴 선물을 개인적으로 주고받는 일은 있어도, '집안 대 집안'으로 마치 거래하듯 집과 돈이 오가는 일은 없다고 했다. 그는 "다국적 기업에 다니면서 한국을 포함해 5개국 결혼식을 직접 봤는데, 식장 앞에서 선물이 아닌 '돈'을 걷는 풍경이 정말 낯설었다"면서 "하객만 현금을 주는 게 아니라 신부 부모도 현금을 보낸다기에 더 놀랐다"고 했다.

영국에선 자기 성(城)에서 식 올리는 극소수 왕족·귀족을 빼면 대다수가 교회와 관청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월세가 보편적이고 모기지 제도가 발달해 신혼집도 신혼부부 힘으로 구한다. 불 팀장은 "영국에서는 부모가 유별난 갑부가 아닌 한 자식 결혼 비용을 지원해주지 않고, 어쩌다 지원해도 전액을 대는 게 아니라 일부만 준다"면서 "나도 결혼할 때 부모님으로부터 자그마한 결혼 선물만 받았다"고 했다.

◇"왜 명품 사주느냐"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직원 다비드 아르놀드슨(34)씨는 6년 전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 장인이 발이 넓어 하객이 700명 왔다.

그는 "스웨덴에서 했으면 100명도 채 안 됐을 것"이라고 했다. 외국 주재원이라 신혼집 보증금은 회사에서 지원받았다. 처가에서 혼수를 전부 마련하고, 아르놀드슨씨 부모에게 유명 브랜드 코트와 양복을 선물해줬다. 한국식 혼례문화를 따른 셈이다. 아르놀드슨씨는 "며느리 집에서 양복을 보내오니 아버지가 깜짝 놀라셨고, 어머니는 '코트가 마음에 들지만 너무 비싼 옷이라 아깝다'면서 1년간 거의 안 입었다"고 했다.

스웨덴 사람들은 대다수가 교회에서 1시간 식을 올린 뒤 집에서 피로연을 한다. 친한 사람들끼리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노는 자리다. 교회에서 식을 하니 임대료도 없고 축의금도 없다. 이마저 번거롭다며 혼인신고만 하고 결혼식 없이 부부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 스웨덴에도 '함(bride chest)'이 있지만, 한국과는 다르다. 신부 어머니가 자신이 쓰던 패물·옷가지·이불·식탁보 등을 상자에 넣어 신부에게 물려준다. 아르놀드슨씨는 "한국식 결혼이 겉보기엔 화려하고 좋아 보여도, 장인·장모님께 부담스럽고 죄송했다"고 했다.

◇"현금 주고받으면 재수 없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 3년 된 후쿠토메 히토시(54) 야마하뮤직코리아 대표는 "도쿄 물가가 서울보다 더 비싸지만, 월세가 보편화되어 있고, 보증금도 한국의 전세금처럼 비싸지 않다"면서 "집값은 스스로 모으고, 나머지 결혼 비용도 반씩 신랑 신부가 직접 내는 게 당연한 일로 되어 있다"고 했다.

한국 여성과 결혼한 호사카 유지(56) 세종대 교수는 "한국에서는 '집은 으레 남자가 해온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집 살 형편이 되면 스스로 집을 사는 것이지 남자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짐을 지우는 일이 없다"면서 "만약 일본에서 여자가 무조건 남자에게 집을 해오라고 요구하고, 그 보답으로 마치 거래하듯 현금을 시댁에 보내면 다들 '격을 떨어뜨리는 행동'이라고 눈살을 찌푸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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