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환경 변해, 드라마서 꿈 펼치는 중"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같은 영화를 요즘 만들고자 한다면 어떨까요. 독립 영화 정도 만들 수 있는 소규모 투자조차도 받아내기 어려울 겁니다. 영화와 배우의 관계도 완전히 변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 연기파 여배우 글렌 클로스(Close·65·사진)를 지난달 26일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남쪽 플라자호텔에서 만났다. 클로스는 법정 스릴러 드라마 '데미지(Damages)'의 5번째 시즌 미국 방영을 앞두고 있다. 그는 '위험한 정사'(1987년), '행운의 반전'(1990년), '101 달마시안'(1996년) 등에 출연하며 성격파 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2007년 미국 케이블 채널 FX에서 시작한 드라마 '데미지'에선 냉정한 법무법인 대표이자 변호사인 패트리샤 휴즈를 5년째 연기하고 있다. 한국에선 케이블 채널 AXN이 10월부터 '데미지' 시즌 2를 방영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여배우가 영화와 배우의 관계가 완전히 변했다고 말하니 의외다.

"최근 영화 업계의 자본은 블록버스터에만 쏠리고 있다. 블록버스터 배우·감독·시나리오 작가들만 영화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미디어의 환경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어울리는 배우는 매우 극소수며, 나는 그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많은 배우와 시나리오 작가들이 영화를 떠나 방송으로 둥지를 옮기고 있다."

―블록버스터에 집중되는 영화계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배우건 작가건, 자신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매체를 찾아가면 된다. 나의 경우엔 방송 드라마가 대안이 됐다. 1960~70년대 큰 인기를 끌었고 내가 좋아했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년)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년) 같은 영화들을 생각해보자. 지금이라면 케이블용 영화로 만들어지거나, 아예 제작비를 얻어내지 못해 태어나지도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배우나 작가가 영화를 떠나 다른 매체를 따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영화에서 연기할 기회가 줄어 섭섭하진 않나.

"1970년대만 해도 영화배우가 드라마에 출연하면 주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불쌍해했다. 그러나 영화 환경이 변한 만큼 방송용 드라마의 성격도 변했다. 예전보다 훨씬 능력 있는 작가들이 영화를 떠나 드라마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다. 미국 중년 배우 중에선 드라마를 통해 제2의 삶을 얻은 이들이 많다. 나도 그렇고, '데미지'에 함께 출연하는 테드 댄슨도 마찬가지다."

1987년 영화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로 이름을 날린 댄슨은 현재 CBS 방송의 범죄 수사물 'CSI: 과학수사대'와 '데미지'에 동시 출연하며 대표적 중년 드라마 스타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미 주간지 '타임'은 당신을 성형수술과 보톡스를 거부하는 '아이코노플래스트' 명단에 올렸다.(아이코노플래스트는 우상파괴자를 뜻하는 아이코노클래스트〈iconoclast〉와 성형수술〈plastic surgery〉의 합성어)

"나는 보톡스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실제로 이마에 보톡스를 맞은 적도 있다. 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무슨 철학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이미 내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알기 때문에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믿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