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한 입담, 섬세한 DJ

"소개팅한 남자와 우연히 버스에서 마주쳤는데, 오늘 머리를 안 감고 나왔어요. 어떡하죠?"(청취자) "문자메시지 한 통 보내세요. '제 머리 감은 모습은 더 예쁜데, 보여 드릴까요?' 하고요."(심현보)

이 남자와의 상담, 간결하고 상큼하다. 요즘 20~30대 여자들, 매일 오전 9시면 그에게 시시콜콜한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낸단다. MBC FM 라디오 '오늘 아침 심현보입니다'를 진행하는 가수 겸 작사·작곡가 심현보(39). '사랑해도 될까요'(유리상자)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성시경) 등 인기가요 300여곡을 작사·작곡한 그가 최근엔 매끄럽고 섬세한 라디오 진행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하루 평균 도착하는 청취자 문자 메시지만 1500여통.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꼭 읽고 답을 달라'는 사연이 매일 수백 건이란다. 남녀노소가 보내는 다양한 사연을 재치 있게 받아내는 입담 덕에 "세상사 많이 겪은 유부남 아니냐"는 얘기도 듣지만, 그는 마흔 살을 바라보는 미혼 남성이다.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심현보는 "애써 해결책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했다. "처음엔 저도 어떻게든 답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결혼하고 아기 키우고 사업하는 사람들 고민에까지 답하기엔 무리가 있잖아요. 'DJ랍시고 답을 내놓기보단, 열심히 듣고 공감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리게 됐죠.(웃음)"

DJ를 맡기 전 라디오 게스트만 10년 넘게 해온 그다. "한창 바쁠 땐 라디오 코너 19개를 한꺼번에 뛴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래도 게스트는 게스트일 뿐, DJ가 되어 프로그램을 끌고 나가는 건 쉽지 않더라"고 했다. "DJ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음악으로 토닥이는 역할도 해야 하니까요. 여동생만 셋인데, 어릴 때부터 그 녀석들 상담해줬던 게 다행히 진행할 때도 큰 도움이 되네요."

그날그날의 선곡도 자신이 가능한 한 직접 한다. 심현보는 "매일 아침 날씨, 분위기를 보면서 어울리는 대중가요나 팝을 60% 정도 섞고, 대중에겐 낯설지만 들려줄 만한 가치가 있는 노래도 찾아서 넣는다"고 했다.

매일 방송하면서 "오히려 배우는 것도 많다"고 한다. 심현보는 "작사·작곡을 하는 나로선 아침마다 2시간씩 음악을 듣고 사람들과 얘기하는 게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덕분에 지난 5월엔 싱글 앨범을 냈고요. 앞으로 2~3곡 정도를 더 만들어서 연말엔 새 정규 앨범을 내려고요."

심현보는 "가능한 한 길게 DJ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고 했다. "매일 같은 주파수에 기대어 이야기와 음악을 나누는 것. 이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어딨겠어요. 오래오래 음악을 만들고, 또 들려주며 사는 게 제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