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 써도 낙찰… '복불복' 최저가 입찰제

한국도로공사는 작년 말 경부고속도로 언양~영천 간 확장 공사(공사 예정금액 875억원)를 최저가 입찰방식으로 발주했다. 공사비를 가장 낮게 써낸 업체에 공사를 맡기는 것이다. 입찰에는 35개 업체가 참여했다. 그런데 낮은 입찰가격을 써낸 업체는 모두 탈락하고 난데없이 가장 높은 가격인 721억원을 써낸 A사가 공사를 따냈다. 탈락 업체들이 써낸 입찰가격은 638억~639억원. A사는 다른 업체보다 83억원을 더 줘야 공사하겠다고 '배짱 입찰'을 했는데도 공사를 수주한 것. 회사 관계자는 "최저가 공사는 사실상 '뽑기'로 결정한다고 보면 된다"면서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최저가 입찰제는 공사비를 낮게 써낸 업체에 공사를 맡겨 예산을 절감하기 위한 제도다. 현재 3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에 적용된다. 최저가 발주 공사물량은 매년 14조~15조원어치에 달한다. 문제는 최저가 입찰제가 운영상 허점 때문에 가장 낮은 가격을 쓴 업체가 아니라 사실상 '로또'식으로 낙찰자가 결정돼 예산절감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 건설업계에선 최저가 입찰제를 '운찰(運札)제'라고 부른다.

◇건설사, "최저가는 사실상 찍기"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최저가 입찰제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저가심사제의 심사 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저가심사제란 업체들이 써낸 입찰가격으로 실제 공사가 가능한지를 검증하는 제도다. 무조건 최저가 업체만 뽑을 경우 자칫 부실 공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2006년부터 저가심사제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먼저 최저가로 발주하는 공사를 콘크리트·철근·포장 등 20~30개 공종으로 세분화해 공종마다 공사비 하한선을 정하고 그 기준 이하로 입찰하는 경우 '부적정 공종'으로 분류한다. '부적정 공종' 수가 전체의 20%를 넘으면 입찰 금액이 아무리 낮아도 무조건 탈락한다.

공사비 하한선은 발주처가 공개적으로 제시한 금액과 전체 입찰 업체가 비공개로 각각 제시한 가격의 평균을 7대3 비율로 반영해 결정한다. 업체들이 어떤 공종의 가격을 얼마나 낮게 써낼지 서로 알 수 없기 때문에 가격을 가장 낮게 써내고도 부적정 공종 수가 많아 탈락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게 된다. 극단적으로 가장 높은 입찰가격을 써내고도 다른 업체들이 부적정 공종에 걸려 모두 탈락하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공사를 따내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B건설사 관계자는 "입찰 공고가 나오면 당첨 예상금액에 맞게 보통 1만 페이지가 넘는 서류를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고 마지막에는 '찍기' 수준으로 최종 입찰가격을 써낸다"고 말했다. 최저가 입찰제를 운영하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현실적인 이유로 최저가 입찰제가 운과 요행으로 결정되는 측면이 많지만 제도 개선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건설 경쟁력 높이려면, 입찰제도 개혁해야

유럽이나 미국, 싱가포르 등 선진국은 공사 발주 기관이 자체 평가한 건설사 리스트를 미리 만들어 놓고 각종 입찰 서류와 기술력을 주관적으로 평가해 낙찰자를 선정한다. 우리나라에선 이 방식을 도입할 경우 특혜·뇌물 시비가 발생할 수 있다. 신(新)공법이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공사비를 낮게 써낸 업체에 가산점을 주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기재부 관계자는 "입찰 때 기술점수를 높이면 연구 인력과 경험이 많은 대형 건설사들이 정부 공사를 모두 따내게 돼 중·소 건설사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산업연구원 최민수 실장은 "예산절감과 건설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입찰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며 "소규모 공사는 대형 건설사 참여를 제한하고, 일정 규모 이상 공사에선 치열한 경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