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문학으로 '사람' 되기

하는 일의 특성상 자주 글을 쓰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 만남은 반드시 촬영과 녹화, 즉 프로그램 제작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엄격한 업무의 연장이다. 촬영을 위해 VJ와 조명 스태프, 리포터와 함께 승합차에 몸을 싣고 작가의 작업장 혹은 약속장소로 떠나는 길. 거기에는 맡고 있는 50분짜리 프로그램 중 8~9분짜리 야외촬영분 한 꼭지를 만들어야 하는 중압감을 넘어 나 혼자 누리는 설렘과 기대가 있다. 연출자 혹은 기획자가 아닌 독자 본연의 설렘과 기대감 말이다.

때로는 소설가 남자나 소설가 여자를, 또는 시인 여자나 시인 남자를 만난다. 글을 지어 업(業)을 삼아온 우리 시대의 글 짓는 사명자들. 아무리 혼탁하고 무질서하게 세상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이들이 곳곳에 틈을 내놓은 창(窓) 덕에 우리의 허파는 신선함을 빨아들이고 우리의 심장은 여전히 두 방망이 치는 것이 아닐까?

냉수 한 잔 마시는 것조차 여유롭지 않은 빼곡한 일정 속에 촬영은 두어 시간 빽빽하게 이어진다. 본격 다큐멘터리가 아닌지라 내용은 인터뷰에 집중된다. 무미한 일상의 질문에도 시인과 소설가는 성의있는 답변으로 나를 안도하게 한다.

촬영을 마치고 다시 차 안, 일터로 귀환하는 시간에 비로소 나는 생각한다. 질문과 답변은 그럭저럭 잘 짜였던가? 편집할 밑그림은 충분할 것인가? 혹시 특별한 영상이 나 몰래 찍힌 것은 없을까? 그리고 맨 나중 제법 크고도 묵직한 감정의 조류가 밀려온다. 떠날 때 함께 했던 설렘과 기대는 어디에 숨어 만족을 취하였는고?

연초에 발간된 최인훈 선생의 '바다의 편지'에 이런 글이 있다. '사회의 모든 악(惡)은 사람들이 어른이 되면서 문학을 접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문학의 기쁨을 모르면 사회는 썩고 사람은 간사스러워진다. 문학을 통하여 사람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선생의 고백은 가끔은 나의 어긋난 기대감을 위로해주며, 여전히 기대감을 포기할 수 없게 하는 나의 믿음이기도 한 것이다.

※ 7월 ‘일사일언’은 임혜선씨를 비롯해 정명현 임원경제연구소장, 이석 2012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가 번갈아 집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