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종이 즐겨 쓰던 미국 대표 사진작가, 한지 만져보더니…

보거더스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다음 화학물질을 활용해 이를 동판에 옮겨 판화처럼 인화하는 기법으로 유명하다. 에티오피아·말리·가봉 같은 아프리카 지역 풍경을 주로 찍는다. 주로 흑백을 사용하는 그는 한지의 흰 빛깔과 검은 잉크가 어울리는 느낌이 와지나 서양 종이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그는 "한지에 그림을 인쇄하면 여린 듯하면서 매우 강렬한 이미지가 표현된다. 빛과 공기가 한꺼번에 통과하기 때문에 전시를 보는 사람과의 친밀도도 다른 종이보다 압도적"이라고 했다.

보거더스의 작품 전시를 포함한 한지 문화제는 뉴욕 맨해튼의 갤러리 밀집 지역인 첼시와 유엔본부 앞 주(駐) 뉴욕 한국 총영사관에서 5월까지 동시에 진행된다. 2일에는 아이보리색 한지로 만든 현대적 패션이 총영사관에 설치한 무대에 올랐고 지난달 29일엔 미국 작가 앨리슨 크로세타가가 한지로 만든 공을 들고 하이라인(뉴욕 옛 철로를 개조한 공중 산책로)을 천천히 구경하는 행위 예술을 펼쳐 관심을 끌었다.

"겉은 섬세하지만 내면은 그 어느 종이보다 강한 한지(韓紙)는 제가 만난 종이 중 가장 특별합니다. 한국인의 근성과 한지의 특성이 매우 닮았다고 생각해요."

지난달 27일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진 및 판화 작가 피터 보거더스(36)의 작업실. 거칠게 찢은 한지 10여장에 흑백으로 인화한 아프리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보거더스는 유망한 중견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구겐하임 펠로' 2012년 수상자 중 한 명으로, 뉴욕의 대표적 사진작가다.

지금까지 일본의 전통 종이인 와지(和紙)를 애용했다는 보거더스는 지난 5월 한지 문화제를 준비하던 뉴욕의 한인 큐레이터 김유연씨 소개로 한지를 처음 접했다. 세 가지 두께의 한지를 건네받은 그는 이를 햇빛에 비춰보고는 '바로 이 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한지의 가장 큰 장점으로 햇빛에 말려서 얻는 독보적 흰 빛깔을 꼽았다. 보거더스는 "한지는 태양의 빛깔을 닮은 종이다. 지금까지 이토록 빛을 잘 투영하는 종이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