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53] 근대 사냥 초창기 "늑대를 쏴라"

1926년 8월 경북 달성군 현풍면과 구지면의 전 주민 1850명이 엽총과 몽둥이와 죽창 등을 들고 산으로 올랐다. 늑대를 때려잡으려는 토벌작전이었다(1926년 8월 19일자). 늑대가 한밤중 인가에 침입해 숱한 아이들을 물고 달아나거나 숨지게 하자 불안과 분노에 떨던 사람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이 땅에 들어온 서양 엽총으로 시작된 근대적 수렵 역사의 첫 페이지에는 갖가지 동기의 사냥이 있었다. '장쾌한 자미에 팔려서 탄환 갑이 꿩 갑보다 몃 배나 더 드는 한이 잇드라도 틈만 잇스면 총을 메고'하는 일부 부유층의 귀족적 취미 같은 사냥도 있었다(1925년 1월 11일자). 다른 한편에는 야생동물을 잡아 생계를 잇는 포수(砲手)의 직업적 사냥과 맹수의 공격에 맞서 자식들 목숨을 지키려고 총을 든 절박한 사냥이 있었다. 특히 1920년대 초부터 날뛴 늑대들 때문에 시작된 '늑대 사냥' 기사들은 지금 봐도 처절하다. 1920년 봄 평북 태천·영변 등지에서는 2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늑대에 희생되자 전 주민이 사냥에 나섰다(1920년 6월 17일자).

그러나 늑대의 난(亂)은 그치지 않았다. 1920년대 지면엔 늑대로 인한 인명 사고와 대규모 '늑대 사냥' 기사가 매년 3~4건씩 크게 보도됐다. 경성(서울)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대문 밖 죽첨정(오늘의 충정로)에 늑대가 출현하여 주민을 공포에 떨게 했고(1921년 7월 11일자), 1926년 1월 14일 밤에는 경성 도심 관철동 주택가에서 늑대로 보이는 동물이 주민을 무는 일까지 일어났다. 1930년 한 해에 호랑이·표범·곰·승냥이에 물려 죽은 사람을 모두 합해 58명인데, 늑대에 물려 죽은 사람이 68명이나 됐다(1931년 8월 13일자). 이런 분위기 속에 1920년대 조선일보 지면에선 사냥총 광고가 부쩍 늘어난다. 1925년의 경우 11~12월 두 달간 사냥총 광고가 5회 실렸고 이 중 3건은 1면에 실렸다.

공교롭게도 조선시대에는 심각하지 않던 늑대 피해가 일제의 식민 통치와 함께 늘어난 것을 겨냥한 듯 조선일보는 1면 논설을 통해 '본래 늑대란 자 업더니… 표랑견축(豹狼犬畜: 표범·이리·개)이 서로 덤비어 사람을 먹음이냐? …난세(亂世)의 정황을 생각할 만하다'고 탄식했다(1927년 7월 29일자).

결국 대규모 사냥에 따라 늑대는 많이 죽었다. 1933년부터 1942년 사이에만 사살·포획된 늑대가 1040마리('한국동물원 80년사')였다. 이렇게 이 땅의 야생 늑대는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