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40%가 교육비… 개인연금 들기도 버거워"

서울 노원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45)씨는 초등학교 5학년과 2학년인 두 딸의 교육비로만 지난해 2960만원을 썼다. 큰아이는 학원 5개, 작은아이는 학원 3개를 보내고, 학습지도 3종류 꼬박꼬박 받아 봤다. 첫째 아이는 사립학교를 다녀 1년 학비가 800만원에 이른다. 따져 보니 자녀 교육비로 들어가는 돈만 연봉의 40%에 이른다. 그의 노후 준비는 월급에서 자동적으로 빠져나가는 국민연금 외에는 월 70만원씩 개인연금을 드는 게 고작이다. 그는 "55세에 퇴직하면 작은아이는 고작 고등학교 졸업반일 텐데 개인연금도 나중에 아이 교육비로 털어 넣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은퇴 준비 최대의 적 '자녀 교육비'

'자녀에게 저당 잡힌 노후'가 김씨만의 고민은 아니다. 신한은행이 지난 5월 말 전국 24~59세 고객 15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은퇴 준비의 장애 요인으로 자녀 교육비를 꼽은 사람이 22%로 가장 많았다. 이어 주택 마련 자금, 자녀 결혼 자금이라는 대답이 뒤를 이었다. 자녀 교육비와 자녀 결혼자금이라는 응답을 합하면 36%로, 결국 자녀 부양에 들어가는 돈이 은퇴 준비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얘기다. 신한은행이 고객 20만명에게 이메일을 보내 응답한 이들의 설문을 분석한 결과다.

응답자들은 자녀 교육비로 월평균 134만원을 쓰고 있다고 대답했다. 유치원은 월평균 89만원, 초등학교 93만원, 중학교 108만원, 고등학교 149만원, 대학교 이상 168만원 식으로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돈이 더 드는 것으로 집계됐다.

'무엇을 기대하고 자녀에게 투자하느냐'는 질문에는 '투자를 하지만 대가를 바라지는 않는다'(38%)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자녀가 좋은 직장을 가졌으면 해서'(35%), '자녀가 결혼을 잘할 수 있도록'(13%), '자녀가 좋은 대학을 가길 바라서'(9%)라는 답이 그 뒤를 이었다. 모두 자녀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을 보여주는 답이었다.

나이가 들어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은퇴 준비를 더 많이 해야 할 텐데, 설문 결과를 보면 응답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은퇴 준비보다 자식에게 올인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50대 응답자들 중에선 '자녀에 대한 투자가 내 은퇴 준비보다 더 중요하다'(18%)고 답한 사람이 '내 은퇴 준비가 자녀에 대한 투자보다 더 중요하다'는 응답자(17%)를 앞질렀다. 반면 30대 응답자의 경우 자녀가 더 중요하다는 응답이 11%에 그친 반면, 내 은퇴 준비가 더 중요하다는 응답은 23%로 훨씬 많았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는 옛말을 떠올리게 하는 설문 결과도 있었다. 응답자들은 부모님 생활비로 월평균 38만원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녀 교육비 투자의 4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 그런데도 전체 응답자의 42%는 부모님 노후생활비를 보태는 것이 '부담된다'고 응답했다.

◇공무원·교사의 은퇴 준비 점수 가장 높아

자신의 은퇴 준비 상황에 대해 스스로 점수를 매기게 했을 때 공무원·교사들이 100점 만점에 64점을 매겨 점수가 가장 높았다. 공무원·교원연금이 든든한 노후 보장 수단이 된다는 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그 다음은 전문직 종사자(60점), 공기업·정부산하기관 직원(58점), 대기업 임직원(57점), 자영업자(57점), 중소기업 임직원(52점)의 순이었다.

전체 응답자들의 은퇴 준비 상황은 매우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이 이상적인 노후 준비 방법으로 추천하는 '연금 3종 세트(국민·퇴직·개인연금)'에 다 가입한 사람은 전체 10명 중 1명꼴에 불과하고, 국민연금에만 가입했다는 사람이 3명 중 1명꼴이었다. 3종 세트 중 두 가지를 가입했다는 사람은 10명 중 4명 정도였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형편에 넘치게 자식 교육에 투자하는 부모보다 늙어서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는 부모가 훨씬 더 좋은 부모라는 식으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