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협력사는 찬밥… 말로만 상생 보증 대출

"1차 협력업체가 아니면 상생(相生) 보증 대출은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한 대기업의 2차 협력업체인 A부품업체 사장 김모(57)씨는 5일 "이럴 거면 '상생 보증 대출'이라는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상생 보증 대출이란 대기업이 은행과 협약을 맺고, 양측이 같은 금액의 돈을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신용보증기금에 출연해 중소기업에 보증을 지원해 줌으로써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2009년 1월 지식경제부 주도로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대출 실적이 당초 기대에 훨씬 못 미치고, 보증 혜택이 1차 협력업체에만 집중돼 A기업 같은 2, 3차 하청업체들은 아무런 혜택도 못 받고 있는 실정이다.

◇2, 3차 협력업체에는 '그림의 떡'

당초 정부는 제조업을 하는 중소기업의 47%가 대기업의 협력업체이고, 이들은 매출액의 85%를 대기업 납품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 상생 보증 대출이 중소 협력업체의 자금난을 덜어주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자랑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동안 11개 대기업이 참여해 총 1조7025억원을 출연하기로 약정을 했지만, 지금까지 실제로 집행된 금액은 3099억원에 그치고 있다. 약속한 금액의 18%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돈조차도 자금 사정이 상대적으로 좋은 1차 협력업체에 집중돼2, 3차 협력업체들엔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또 대출 기간이 대부분 1년으로 국한돼 협력업체들의 중장기 자금 수요에 맞는 지원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중소기업 자금 사정 계속 악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소기업 내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중소기업 영업이익에서 매출 규모 상위 20%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8년에는 58%였지만, 지난해에는 64%로 높아졌다. 또 중소기업 가운데 자금 사정이 양호하다는 업체의 비율이 2010년 5.9%에서 지난 1월에는 4.6%로 떨어졌다. 반면 자금 사정이 곤란하다는 업체는 30% 선까지 높아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2008년 말 1.09%에서 지난 4월 말에는 1.73%로 높아졌다. 사정이 이런데도 상생 보증 대출은 바람막이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또 다른 대기업의 중소기업 자금 지원 프로그램인 '상생 협력 대출'은 어느 정도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상생 협력 대출은 대기업이 은행의 저금리 예금에 돈을 넣으면, 은행이 그 돈을 재원으로 해당 대기업이 추천하는 협력업체에 저리의 자금을 대출해 주는 제도다. 93개 대기업이 참여해 4조9228억원을 약정했고, 지난 4월 말까지 2조2713억원이 지원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상생 협력 대출은 구조가 단순한 데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별 협력업체 자금 지원 실적을 평가하기 때문에 상생 보증 대출에 비하면 실적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2, 3차 협력업체 지원 개선방안 추진

상생 보증 대출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은 제도의 결함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원을 받는 중소기업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대기업만 갖고 있어 지원 대상이 우량 협력업체에 한정되기 쉽고, 대기업이 적극성을 갖지 않으면 제대로 굴러가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도 이런 구조적 문제점을 깨닫고 개선책 마련에 나섰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정책금융공사 등 정책금융기관도 지원 대상 중소기업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과 2차 이하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 실적이 우수한 대기업은 동반성장위원회의 동반성장 실적 평가 때 가산점을 주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금융 당국 관계자는 "지원 대상에서 1차 협력업체 비중을 제한하거나, 2차 이하 협력업체의 비중을 정해서 지키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생 보증 대출에 참여하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원해 줄 만하다 싶은 협력업체를 찾아서 추천해도 보증기관에서 탈락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지부진한 게 우리만의 책임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