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한민족 국가, 中 기록에도 있어"

"중국이 만리장성의 범위를 요하 넘어 고구려 천리장성까지 확장시킨 것은 이 사업이 예전 동북공정과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민족 통일국가'라는 이름으로 주변 소수민족사를 '중화'에 흡수하려는 거지요. 하지만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 아니라 당당한 우리 민족 국가라는 사실은 중국 기록에도 나옵니다."

신형식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소리를 높였다. 40년 학문 여정의 절반을 해외 고대사 유적 답사에 바친 그는 1994~2000년 천리장성을 직접 다녔다고 했다. "만리장성이 올 수 있는 경계가 요하입니다. 그 너머 천리장성은 고구려가 중국 세력에 대항해 쌓은 겁니다. 고구려가 중국 지방정권이라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영류왕 5년(622)에 당 고조가 고구려에 보낸 조서에도 '두 나라가 통화하는 것은 의리에 어긋날 것이 없다'고 했어요."

그가 그간 누빈 현장 기록을 담은 책 '다시 찾은 한국 고대사 해외 유적'(주류성)을 냈다.

1993년 전국에 '고구려' 신드롬이 일어난 것도 실은 그의 유적 답사가 발단이었다. "안식년으로 연변대에 머물 때에 이윤기 해외한민족연구소 소장이 고구려 벽화를 보러 가자고 했어요. 지안(集安)시 북방 우산묘구의 5회분 4호묘는 그 전까지 비공개였던 건데 허락을 받아 처음 들어가 봤어요. 전등을 든 박물관 직원을 따라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지는 임시 묘도를 따라 주실에 들어서는데, 어휴 사방 벽을 가득 채운 사신도(四神圖)가 완벽하게 보존돼 있더군요."

국내에서 개최된 '아! 고구려' 전시회(해외한민족연구소 주최, 조선일보사 주관)는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며 358만명의 관람객을 모으는 등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그 후 그는 중국과 일본 내 고구려·발해·백제·신라 유적지를 훑고 다니며 책과 논문을 써냈다.

"우리 고대사를 장식했던 나라들이 결코 변방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 해외 진출에 더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도 알고 자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썼습니다."

그는 1968년부터 서울대·한국외대를 거쳐 이화여대에서 25년 재직 끝에 정년퇴임 한 후 상명여대에서 석좌교수를 지냈다. 초기에는 문헌 연구에 몰두하다 나중에 해외 답사로 방향을 돌렸다. 국사편찬위원과 한국고대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