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직장에나 있죠, 고등어·놀래미 같은 사람들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애니메이션 한 편이 관객들 사이에 큰 화제를 모으며 'CGV무비꼴라주상'을 받았다. 이대희(35)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파닥파닥'(26일 개봉)이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인간사회의 직장 생활과 그 안의 권력관계를 어항 속 물고기 군상(群像)에 빗대 묘사하고 있다. 평론가들은 지난해 인간의 폭력성과 처절한 사회현실을 교실 속에 담아낸 '돼지의 왕'에 이어 또다시 묵직한 주제의식을 가진 성인 애니메이션 문제작이 나왔다고 평하고 있다.

'파닥파닥'의 배경은 횟집 어항이고 주인공은 그 어항 속의 고등어, 줄돔, 넙치, 놀래미이다. 횟집 어항에 들어간 고등어가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았다. 살아있는 물고기의 내장을 꺼내고 살점을 발라내는 장면을 세밀하고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18일부터 서울시 주최로 열리는 '제16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에서 경쟁부문 후보에 올랐다. 3일 서울 남산 근처 한 카페에서 이 감독을 만났다.

―애니메이션인데 작품 배경이 횟집 어항이다.

"예전에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 다닐 때 출퇴근길에 횟집이 있었다. 회사에서 혼나기라도 한 날이면 횟집 어항 속에 있는 물고기들이 그렇게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물고기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회사 다니는 게 힘들었나.

"작품 만들면서 직장 생활을 많이 떠올렸다. 재밌기도 했지만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아이디어 내면 무시당하고, 윗사람에게 좀 대들기도 한 게 고등어와 비슷했다."

―고등어와 놀래미 등 예쁘지도 않고 평범한 물고기들이 주인공이다.

"물고기들의 성격이나 특징에 따라 캐릭터를 만들었다. 고등어는 직선으로만 가는 습성이 있다. 활어 횟집의 고등어는 어항에 머리를 많이 박아 코가 눌려 있을 정도다. 횟집에서 놀래미는 멍청한 물고기로 통한다. 사람들이 심심하면 수조에다 낚시를 하는데 그때마다 걸리는 게 놀래미다. 영화 속에서 답답할 정도로 올곧은 고등어나 순진한 놀래미의 캐릭터는 여기서 따왔다. 그런데 물고기가 안 예쁘다 보니 투자받는 데 고전했다. 캐릭터 비즈니스가 안 된다고."

―물고기 박사 같다.

"2007년 회사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이왕 하는 거 작품 사전조사도 할 겸 활어회센터에서 6개월간 일했다. 그때 물고기 관찰도 많이 했고 회도 떠봤다. 극 중 통으로 회가 떠진 뒤에도 입을 뻐끔거리는 고등어에게 손님이 담배를 물리는 장면도 그때 본 걸 그린 것이다."

―2008년 회사를 세우고 작품을 만드는 동안은 어떻게 회사와 생계를 유지했나.

"콘텐츠진흥원에서 현물 지원을 받기도 하고, 집 전세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간신히 유지했다. 그래서 지금도 빚이 많다. 작품을 만드는 중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아내는 '이번까지만 해보라'고 하면서 기다려줬다."

―이번에 흥행 성적이 안 좋으면 그만둬야 하는 건가?

"이혼당할지도 모른다(웃음). 농담이다. 난 죽을 때까지 애니메이션 하기로 했으니 또 계속 설득해야 한다."

―고등어가 관상어 어항에 들어가 관상어를 먹어버리는 장면에서 나온 물고기가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니모'와 닮았다. 일부러 그렇게 설정했나.

(처음에는 아니라고 부정하다가)"맞다. 원래 횟집에선 흰동가리(니모와 같은 종) 같은 걸 관상용으로 키우진 않는다. 물고기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니까 다들 '물고기? 니모 짝퉁인가?'란 반응을 보이기에 '니모'에 도전해보겠단 욕심을 작품에 반영했다."

―다음 작품은.

"'파닥파닥'은 반항심 가득한 총각 때 시나리오를 썼던 작품이다. 어린이 관객에 대한 배려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긴 뒤로는 어린이나 가족이 함께 와서 볼 수 있는 작품이 굉장히 만들고 싶어졌다. 로봇이 나오는 작품을 구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