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의 히어로 & 히로인] [21] 모든 꿈과 욕망을 쟁취한 이 남자, 한 조각 여인의 마음만은 얻지 못했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를 오늘날의 눈으로 본다면 빤한 통속극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연인을 되찾기 위해 고생 끝에 부자가 되어 돌아온 남자, 그러나 여자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버렸고, 남자는 그녀 곁을 맴돌다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에게 '위대한 개츠비'라는 이름은 영원한 사랑을 뜻하는 대명사이기도 하다. 낭만과 열정을 잃어버린 현대의 연인들에게 그의 순애보(純愛譜)는 고전적이고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름 앞에 '위대한'이라는 형용사를 뺀, 그냥 개츠비(로버트 레드포드)는 어떤 사람일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늘 현실 저 너머를 욕망했다. 열 살 나이에 이미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 '매주 5달러씩 저금할 것' 같은 꼼꼼하고 구체적인 생활계획표를 만들어 지키려고 애썼다. 먼 미래에 수확할 달콤한 과일을 위해 뙤약볕 아래에서 오늘을 견뎌낸 것이다.

금주법(禁酒法)이 시행되던 1920년대 미국에서 밀주(密酒) 거래를 비롯한 여러 불법사업을 통해 그는 거대한 부를 축적해 간다. 그가 좇은 것은 오로지 물신(物神), 즉 돈뿐이었다. 비정한 행위를 감추는, 스스로를 위한 명분은 언제나 '그녀'였다. 데이지(미아 패로)에게 닿기 위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결국 그는 백만장자가 되었고, '개츠'이던 본명을 '개츠비'로 바꾸곤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렇지만 이미 유부녀가 된 데이지는 그에게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모든 걸 가진, 하지만 단 하나만을 갖지 못한 이 가련하고 고독한 사내를 보라. 그는 데이지의 집이 바라보이는 곳에 저택을 얻고는 어둠 속에 숨어 옛 사랑의 창문을 하염없이 훔쳐본다. 으리으리한 성(城) 안에서 개츠비가 누추한 몸을 숨길 곳은 자신의 그림자뿐이다. 본인은 몰랐겠으나 설령 그녀를 쟁취하였더라도 그의 무기력한 갈망은 끝내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헛되고 헛된 욕망의 본질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