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먹여 살릴 과학자] 자폐증 비밀 벗긴 1000억 사나이…세계가 주목

대전광역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건물 4층 동물실에는 '이상한' 쥐들이 살고 있다. 온종일 콧수염만 매만지는 쥐, 살아있는 친구들보다 무생물인 인형에 더 관심을 보이는 쥐, 모성 본능을 잃고 새끼를 돌보지 않는 쥐. 이들은 모두 '녹아웃(Knock Out·KO)' 쥐이다. 녹아웃이란 어떤 유전자의 역할을 알아보기 위해 그 유전자만 콕 집어 기능을 못 하게 하는 연구 기법이다. 이 실험용 쥐들을 자세히 관찰하는 사람은 뇌신경과학 분야의 권위자 김은준(48) 교수다.

"자폐증 환자의 뇌를 관찰하면 특정한 유전자에서 결함이 발견됩니다. 쥐는 사람과 유전자 구조가 80~90%가 같죠. 쥐도 뇌에서 자폐증 환자와 같은 유전자를 찾아내 녹아웃시키면 자폐증 증상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 쥐들의 뇌를 분석하면 자폐증 원인을 찾아낼수 있는 것이죠."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먼이 연기한 레이먼드 배빗,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초원이와 같은 자폐증 환자는 세계 인구의 약 1%(7000만명)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선 인구의 2%(100만명)로 추정된다. 자폐증 환자는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이나 정서적 교감이 불가능하고 특정한 행동을 반복한다. 인간 본연의 사회성을 상실하기 때문에 환자 자신보다 가족이 더 고통스럽다. 최근 어린이들에게 드물지 않게 발견되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도 비슷하다.

환자 가족을 더 힘겹게 만드는 건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 김 교수는 "자폐증과 관련이 있다고 밝혀진 유전자가 10여개에 이르지만 유전자 하나하나는 전체 자폐증 유형 가운데 고작 1% 정도를 설명할 뿐"이라고 말했다. 모든 유형의 자폐증을 설명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발병 경로를 찾는 것이 김 교수의 목표다.

김 교수는 뇌신경세포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synapse)에 해답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간의 뇌에는 100조개가 넘는 시냅스가 있고, 시냅스마다 유전자 1000여개가 고유한 단백질을 분비해 그 기능을 조절한다. 김 교수는 "이 유전자 1000개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시냅스 기능에 문제가 생겨 신경회로가 망가지고 결국 뇌 질환이 생긴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폐증과 치매·우울증 등 뇌 질환자들의 뇌는 한결같이 시냅스가 약화돼 있다.

연구는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달 서울대 강봉균(생명과학부), 연세대 이민구(의대) 교수와 팀을 이뤄 자폐증의 원인이 되는 새 시냅스 유전자를 찾아내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했다. 지난해엔 ADHD를 유발하는 시냅스 유전자 결함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그는 부산대 약대 4학년 때 신경과학에 매혹돼 대학원에서 전공을 바꿨고 미 미시간대에서 신경과학 박사 학위를 땄다. 1995년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후과정을 하면서 시냅스의 틀을 만들어주는 'PSD-95'라는 단백질을 발견, 네이처에 발표했다. 시냅스가 뭐로 구성돼 있는지 베일에 싸여 있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연구였다. 그는 이후 시냅스 단백질 20여 가지를 추가로 규명해 내 젊은과학자상(2004년), 생명약학회 우수논문상(2005년)을 수상했고 40대에 KAIST 석좌교수(2011년)가 됐다.

김 교수는 지난 5월 향후 10년간 연구비 1000억원을 지원받는 기초과학연구원 연구단장에 선정됐다. 그가 제시한 도전 과제는 시냅스 단백질과 정신 질환의 관련성을 규명하는 쉽지 않은 연구. "제 논문이 발표될 때마다 자녀가 자폐증이나 ADHD를 앓고 있는 부모들이 자녀의 임상시험을 자청하는 절절한 이메일을 보내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시냅스(synapse)

신경세포를 서로 연결하는 부위. 신경 정보를 한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전달할 때 통로가 된다. 그리스어로 ‘함께’라는 뜻의 ‘syn’과 ‘접촉하다’는 뜻의 ‘haptein’에서 나온 조어(造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