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명장·석공예 명장·보일러 명장… 한국 최고들이 지리산에 간 까닭은

7일 경남 하동군 평촌마을, 지리산 자락의 시골 마을에 대한민국 최고의 기능을 가진 명장(名匠) 70명이 동시에 모였다. 이들이 모이자 녹이 묻어나던 30여개의 대문은 새것처럼 변했고, 1년째 시동이 안 걸리던 경운기가 살아났다. 버리려 했던 보일러가 다시 돌아갔고, 뻑뻑했던 40여개의 미닫이문이 스르르 열렸다. 미스코리아 머리단장을 해주는 미용 명장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머리를 멋지게 손봐주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명장들의 사회 환원'이라는 취지로 마련됐다. 명장회 회장 김영모 제과 명장은 "나라에서 준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사회적 책무를 하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6월 중순 이런 취지를 담은 편지를 전국 500여명의 명장에게 띄웠다. 처음엔 각자의 분야에서 정신없이 바쁜 명장들이 얼마나 참가할지 걱정이 많았지만 70여명의 명장이 시간을 기꺼이 내겠다는 뜻을 밝혀와 안심했다.

이날 전국에서 명장 70명이 새벽에 버스를 타고 평촌마을로 향했다. 작업은 오전 10시에 시작됐다.

"페인트를 이렇게 바닥에 흘리면 안 돼. 명장이 더럽히고 갔다고 욕먹는다니까?" 경복궁 복원만 25년째 진행 중인 대한민국 석공예 분야의 1인자인 임동조(57) 명장은 초보인 '페인트칠'을 하다가 핀잔을 들었다. 임 명장을 혼낸 임충휴(63) 명장은 48년 동안 나전칠기 분야에만 매달려온 명장. 국회의사당 내 한옥도 임 명장의 손을 거쳤다.

집주인 방설대(77)씨는 "쉬엄쉬엄 하이소, 땀이 저리 나서 우짤꼬"라 말하면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작업 중간 연결고리가 끊어진 대문이 발견되자 김일록(51) 용접 명장이 나섰다. 김 명장은 "대형 비행기도 붙이는데 대문이야 금방이지"라며 5분도 안 돼 대문을 달았다. 시동이 안 걸리던 경운기가 내뿜는 시원한 엔진 소리는 윤태호(64) 농업기계 명장의 솜씨였다. 20년 된 고장 난 보일러도 우장균(57) 명장이 10여분간 만지자, 금세 말 잘 듣는 보일러로 변신했다. 우 명장은 국내 화력·원자력 발전소 건설에도 참여한 보일러 최고 기술자다.

마을 회관 앞은 '미용 명장'을 기다리는 주민 20명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할머니들의 머리를 다듬는 김진숙(58) 명장은 미스코리아들의 머리를 담당해 왔다. 김 명장 옆에서 파마 약품을 건네주는 김국상(59) 명장은 자동차 도색 명장이다. 이 날 박인주(65) 창호제작 명장이 고친 미닫이문은 40여개, 주용부(82) 칼 명장이 간 칼은 55개다. 두 명장은 "어깨 아프겠다"며 그만하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이곳에 오겠느냐"며 버스가 서울로 떠나기 전까지 마을 구석구석을 돌았다. 작업 5시간 만에 마을은 산뜻하게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