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창극 함께 준비하는 3대 판소리 가족

전북 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 최승희(75) 명창과 딸 모보경(48) 전북도립국악원 교수, 외손녀 김하은(16·국립전통예술고교 1년)양은 '모계 3대 판소리 가족'이다. 2대에 걸친 판소리 가문은 적지 않지만, 3대가 모두 판소리 하는 집은 드물다.

모씨와 김양은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 뱃속에서 판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모씨는 "어머니(최승희)가 임신했을 때도 공연했다고 하니 태교도 판소리로 하셨던 셈"이라 했다. 서울에서 제자들이 찾아와 최씨 앞에서 노래할 때 꼬마 모보경은 "지금 그 소리는 틀렸다"고 외쳤다고 한다. '소리 가문의 3대'인 김양도 말을 시작할 즈음부터 판소리 '춘향가'에서 임을 그리는 대목을 흥얼거렸다는 게 어머니 증언이다.

'소리 외길'이 힘들다는 걸 잘 알기에, 최씨와 모씨는 모두 '딸'에게는 소리를 시키고 싶어하지 않았다. 모씨는 "가야금 산조부터 시조와 무용까지 전통 음악이라면 안 배운 것이 없었지만, 부모님께서는 '판소리 하면 가난하고 힘들다'며 많이 말리셨다"고 했다. 김양도 "외할머니와 어머니 모습을 지켜보면서 판소리의 길이 좁고 인정받기 쉽지 않다는 걸 어릴 적부터 깨달았다"고 말했다.

예인(藝人)의 재기를 발산하고 싶었던 모씨와 김양은 영화나 방송으로 외유한 적도 있다. 이장호 감독의 영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에서 흘렀던 '옥중가'는 모씨 목소리다. 이 감독의 영화 '어우동'에서 주연 배우 이보희씨가 시조를 부르는 장면도 그가 대신 불렀다. 모씨는 "단역 배우로 틈틈이 출연하면서 주연의 꿈을 키웠는데, 감독님이 '키가 작아 안 된다'고 하는 바람에 곧바로 짐을 쌌다"고 했다. 김양도 작년 신인 가수 발굴 프로그램인 'K팝스타'에 출연했지만, 가족 내력을 접한 심사위원들이 "판소리에 정진하는 게 낫겠다"는 조언과 함께 탈락시켰다. 김양은 "가족이 '어릴 때는 무엇이든 경험해보는 것이 낫다'며 출연을 권유했다"면서 "지금도 어머니는 쉬실 적에 마야의 '진달래꽃'을 부르신다"고 했다.

모씨와 김양 모녀는 오는 21일부터 8월 18일까지 전주소리문화관에서 열리는 마당 창극 '해 같은 마패를 달같이 들어 메고'에 함께 출연한다. 판소리 춘향가를 바탕으로 하는 이 창극에서 모녀가 맡은 역도 월매와 춘향 모녀다.

김양은 "준비 안 된 이에게 무대는 무서운 곳이라 하는데, 막상 어머니보다 연배가 많은 선생님 앞에서 노래하려니 두렵기만 하다"고 말했다. 1998년 위암으로 두 차례 수술받은 후 공연 횟수를 줄인 최승희 명창은 딸과 외손녀의 공연을 관객으로 관람할 예정. 최 명창은 "딸과 외손녀를 함께 내보내려니 재미도 나지만 걱정도 태산"이라며 "일단 연습부터 시키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