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재테크 과잉 사회

2년 전 독일 통일 20주년을 맞아 베를린 출장을 갔을 때 일이었다. 내로라하는 경제 전문가를 만나 통독(統獨)이 독일 경제에 미친 영향을 취재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여담 삼아 "통일이 어떤 투자 자산에 호재(好材)로 작용했느냐"고 물었다. 질문 취지를 몰라 어리둥절하던 그는 옆 동료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감을 잡고 몇 마디 답을 줬다. 통일 후 동독 지역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거 옛 서독 지역으로 몰려오면서 서독 지역의 소형 아파트 수요가 크게 늘어 집값이 많이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또 동독 지역에 건설 붐이 일면서 건설사 주가도 많이 올랐다는 얘기도 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답이었지만, 명색이 경제 전문가라는 사람이 이런 질문에 대한 답도 제때 못하는 모습이 더 인상에 남았다.

파리 특파원 시절 만난 유럽인들의 재테크에 대한 관심과 상식은 딱 독일의 그 박사 수준이었다. 연금 제도가 발달해서 그런지 유럽의 보통 사람들은 재테크에 별 관심이 없다. 프랑스인들은 여윳돈이 생기면 '리브레 A(Livret A)'라는 정기예금에 넣는 것이 고작이다. 1인당 3만유로(약 4500만원) 한도까지 국가가 특별 이자를 보태주는 예금인데 보통 사람들은 다른 생각 없이 이걸로 재테크를 한다. 독자의 무관심을 반영하듯 유럽 신문에선 재테크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유럽 사람에게 요즘 국내에서 최고의 재테크 상품으로 부상한 ELS(주가지수연계증권), ETF(상장지수펀드) 같은 걸 물어보면 십중팔구 "무슨 국제기구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재테크에 목을 맨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재테크 서적이 빠지지 않고, 개인의 선물·옵션 거래량은 압도적인 세계 1위를 차지한 지 오래다. 노후를 나라에 의지하기 힘들고, 은퇴 시기는 이르니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해는 가지만 재테크에 무능하면 인생 낙오자쯤으로 취급되는 사회 분위기는 문제가 있다.

최근 우리 경제의 난제(難題)로 떠오른 '하우스 푸어(house poor)' 문제도 뿌리를 따지고 보면 재테크 과잉 사회의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4~5년 전 부동산 버블 정점기에 빚을 내 집을 산 것이 막차를 탄 결과가 됐다. 집값 하락으로 곤경에 빠진 중산층이 100만명이 넘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요즘 세계경제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 재정 위기 유럽 국가 중 스페인과 아일랜드가 우리와 사정이 비슷하다. 두 나라 모두 온 국민이 빚을 내 부동산 투자에 올인(all-in)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 가입 후 외국 은행이 싼 자금을 무차별 공급한 것이 주 요인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다른 면이 있다.

우리는 이런 외부 요인 없이 내재적으로 버블을 키웠다. 국민의 재테크 욕망에 은행이 기름을 끼얹은 결과다. 이런 점에서 하우스 푸어 문제는 개인만의 책임은 아니다. 적절한 재산 증식 대안을 제공하지 못한 정부와 손쉬운 장사 수단으로 주택 대출 확대에 목을 맨 은행도 일부 책임이 있다. 정부와 금융권이 하우스 푸어 돕기에 발 벗고 나서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