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뿔이 흩어진 277년 역사… 돌덩이 2만개 퍼즐 맞추기

"저 돌덩이들은 뭐야."

"구청에서 무슨 건물 신축공사 하는 모양이지."

9일 대구 중구청 앞 광장을 지나는 시민들은 일부 비닐에 덮인 돌덩이를 보며 궁금해했다. 이곳에 있는 돌덩이는 길이는 50~130㎝, 두께는 30~40㎝로 68개에 달한다. 이 돌덩이는 평범해 보이지만 277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물들이다.

중구청이 4년간 노력한 끝에 하나둘씩 옮겨왔다.

중구청에 따르면 이 돌들은 조선 영조 12년인 1736년에 외침을 방어하기 위해 세웠던 '대구읍성'에 사용된 것들이다. 선조 시절의 토성이 무너지자 보강을 위해 석성으로 바꿨다. 대구읍성은 길이 2650m에 높이 5.1~5.5m 규모로, 화강석 2만여개가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구읍성은 한일합방(1910년) 3년 전인 1907년에 친일파인 당시 대구부사 박중양(朴重陽)이 도시를 넓힌다며 마구잡이로 철거해 사라졌다. 당시 조정에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돌들도 흩어져 축대나 정원석으로 사용됐다.

중구청은 2008년부터 대구 도심에 이 돌을 다시 설치해서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자는 '대구읍성 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원래 읍성이 지나던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를 따라 바닥에 깔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주민 반응은 시큰둥했다. 갑자기 돌을 달라고 하니 '값나가는 물건인가보다'하고 짐작해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구청 양수용 도시관리과장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되나 싶으면 건물주가 고액 보상을 요구했고, 아예 갑자기 기증 의사를 철회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결국 중구청은 4년간 돌덩이 2개를 기증받는 데 그쳤다.

중구청은 지난 2월부터 다시 본격적인 캠페인에 나섰다. 대구 각지의 읍성 돌 소재 파악 작업부터 시작했다.

대구 계성고 건물 담장에 무려 5000여개가 사용된 것을 파악했고, 대구향교 담장, 동산의료원 내 선교사 주택의 기초석 등에서도 읍성 돌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파악한 숫자는 대략 1만여개에 달한다. 그러나 105년 전에 이미 철거된 읍성 돌을 압류할 권한은 없다고 구청 측은 밝혔다.

다행히 올 2월 중구 동인동에 쇼핑몰을 신축하는 건물주가 정원석으로 사용했던 읍성 돌 35개를 기증했고, 중구 계산동의 한 공사장에 있던 읍성 돌 25개도 넘겨받았다. 지난 3월에는 읍성 돌 찾기에 나선 구청 직원들이 총 6개의 돌을 개별적으로 찾아내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모두 68개의 읍성 돌이 확보됐다.

윤순영(60) 중구청장은 "후손들에게 국권침탈 역사의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읍성 돌은 대구 도심으로 옮겨놔야 한다"며 "기증자의 이름을 새기는 등 최대한 예우해 많은 돌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