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난 좋다, 기다리는 내가

서둘러 기차를 타고 서울을 향해 달렸다. 무엇인가에 대한 '기다림'이 없다면, 이 삶은 얼마나 황폐할까. 평소 실물을 보고 싶었던 사상가가 방한한다는 소식에 나는 한껏 들떠 있었다. 물론 그의 저서를 처음 접했을 때의 압도된 흥분은 아니었지만, 오래도록 알고 있는 지인을 만나러 가는 적당한 설렘이 함께했다.

드디어 커다란 강연장으로 들어오는 반백(半白)의 그가 보였다. 텅 빈 강연장에 비해 너무도 작아 보이는 책상과 의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남루한 군용바지에 티셔츠,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분주한 제스처의 한 남자. 두 시간여의 강연. 그리고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대개 질문은 우스꽝스럽고, 대답은 자의적이다.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나는 이런 식의 대중강연을 좋아한다. 생면부지의 누군가를 만나고, 그의 말을 경청하기 위한 노력은 애처롭기까지 하지만, 그것은 진지함을 넘어서는 유머를 갖고 있다. 강연자뿐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청중 개개인의 과장된 표정과 몸짓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애초에 강연이란 형식 자체는 어떤 대답을 서둘러 듣기 위한 장치는 아닐 것이다. 혹자는 그의 방한에 대해 냉담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무엇인가 '답'을 얻어내기 위한 비판이라면 나는 쉽게 동의할 수가 없다.

때로는 만남의 내용만을 정리하다가 '만남' 자체가 주는 의미를 잊어버릴 때가 있다. 어떤 만남의 경우를 떠올려 보자. 누군가를 만날 때, 그와 만날 때의 '내'가 좋게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그와 만날 때의 내 모습이 좋다.' 그를 기다리며 분주한 나의 모습이, 그를 만날 때의 나의 마음이 좋기 때문에 그를 기다린다. 뭐, 그런 느낌이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