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6000명이 한 생명을 살렸다

2010년 8월 해나 워런(Hannah Warren·2)이 태어난 분만실에선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기도(氣道)가 없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사례가 50건만 보고된 '선천성 기관 무형성증'이었다. 당시엔 치료 성공 사례가 없었다. 한국 국적인 해나는 경기도에서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는 캐나다인 아버지 대럴 워런(36)씨와 한국인 어머니 이영미(35)씨의 둘째 딸이다.

해나는 출산 직후 서울대병원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 교육을 하러 한국에 온 재미(在美) 간호사 린제이 손(60)씨를 만났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22년간 근무하고, 2010년 퇴직한 신생아 전문 간호사다. 미국으로 돌아간 손씨는 해나를 잊지 못하고 그해 12월 해나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나를 미국에서 치료합시다." 손씨는 미국에서 해나를 수술해 줄 의사를 찾아 분주히 돌아다녔다.

이듬해인 2011년 2월 1일 해나의 이런 사연이 본지에 실렸다. '기도 없이 태어난 해나, 희망을 만나다'라는 제목이었다. 기사를 본 익명 기부자 3명이 각각 1000만원, 500만원, 100만원을 내놓았다. 서울대어린이병원 후원회와 사랑밭새벽편지 후원재단도 해나를 위한 모금을 펼쳤다. 지금까지 인터넷 홈페이지, 메일링, ARS 등으로 진행된 모금엔 4만6000여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1억3810만5421원을 모았다. 재미 간호사 손씨의 노력도 기적과 같은 릴레이를 펼치면서 차례로 열매를 맺었다.

손씨에게 해나 이야기를 들은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병원 소아과 전문의 마이크 홀트먼 박사는 작년 4월 "해나를 꼭 살려주겠다"고 부모에게 약속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3개월 후 스웨덴 카롤린스카대 병원의 파올로 마키아리니 박사에게 해나를 소개했다. 해나 출생 5개월 후인 2011년 7월 7일 세계 최초로 환자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인공 기관지 이식 수술에 성공한 의사였다. 마키아리니 박사도 "해나에게 기도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은 꼬리를 물었다. 미국의 어떤 기업은 해나에게 전용기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기업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해나와 해나 부모, 한국 의료진 2명과 미국 의료진 2명이 타고, 해나에게 필요한 호흡 및 영양 장비 등을 실어야 하기 때문에 전용기는 해나에게는 필수적이다. 수술을 맡기로 한 일리노이주립 어린이 병원 재단은 수술비 2억여원가량을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

해나는 이르면 7월 안에 미국에 간다. 마키아리니 박사가 집도하는 '줄기세포 이용 기도 형성 수술'을 받기 위해서다. 해나는 이번 수술로 16세 여자 기도 크기까지 확장될 수 있는 기도를 선물받게 된다.

9일 만난 해나는 얼굴에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모습이었다. 걸음마가 제법이었다. 이날 해나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해나 엄마는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그는 '기적'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해나 첫돌 무렵 농담 삼아 '해나야, 미국 갈 때는 걸어서 가자'고 했는데, 정말 이렇게 걷게 되다니요. 기적 같죠. 도와준 분들 한 분씩 찾아뵙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해나가 이렇게 잘 버텨준 건 기적이에요. 수많은 사람의 사랑이 모여 만든 기적. 해나는 분명 커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이 될 것 같아요. 해나가 자유롭게 숨을 쉬는 기적이, 한 번만 더 일어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