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M 버스, 런던을 달린다

9일 오전(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지' 카나리 와프(Canary Wharf). 모건스탠리·HSBC 등 세계적 금융기업의 초고층빌딩이 즐비한 이곳 광장에 고색창연한 2층 버스가 한 대 들어섰다. 독일 패션 브랜드 MCM을 상징하는 황금색 '코냑 비세토스' 모노그램이 래핑된 런던의 명물 '루트마스터(Routemaster·2층 버스)'였다. 버스 내부는 MCM 대표 컬렉션 20여점과 감각적인 패션쇼 영상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주변을 지나가던 직장인들도 발길을 멈춘 채 "낡은 버스의 변신이 놀랍다" "마치 여행 트렁크 같다"며 관심을 나타냈다.

"일종의 '움직이는 플래그십 스토어'입니다. 여행이 가지는 독립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 버스가 가진 이동성(mobility)을 런던 한복판에서 MCM의 정체성으로 표현하고 싶었죠." 이날 런던에서 만난 김성주(56) MCM 그룹 회장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페이스북·트위터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전 세계로 훌쩍 떠나가지 않느냐"며 "버스가 가진 이동성으로 기존 럭셔리 브랜드의 정체된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고 했다.

1976년 독일 뮌헨에서 탄생한 MCM은 2005년 한국 성주그룹에 인수됐으며,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270여개 매장을 운영하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다.

65년 전에 제작된 이 버스는 10일 런던 웰링턴아치에서 세계 언론들을 상대로 공개 행사를 가진 뒤 11일부터 런던올림픽 폐막일(8월 12일)까지 약 한 달간 런던 도심 곳곳을 운행한다. 하루 3~6회, 최대 25명씩 태우고 런던아이·국회의사당·올림픽주경기장 등 런던 주요 관광지를 50여분간 돌 예정.

MCM 측은 "패션 브랜드가 웰링턴아치에서 공식 행사를 갖는 건 MCM이 처음"이라고 했다. "19세기 초 영국이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세워진 웰링턴아치는 그간 상업 브랜드의 이벤트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김성주 회장은 이번 행사의 의미에 대해 "런던올림픽 마케팅이자 럭셔리 브랜드의 '헤리티지(유산)' 전략"이라고 했다. "런던의 상징물인 2층 버스에서 런던 역사가 담긴 풍경을 구경하고, 동시에 MCM의 장인 정신과 역사적 컬렉션을 경험해보라는 거죠." 그는 "이제 럭셔리 브랜드의 주고객은 인도·중동·중국 등 아시아의 부호들"이라며 "이들은 유럽 문화를 동경하면서 동시에 그것의 오랜 역사와 유구한 유산을 존중해 왔다"고 했다.

김 회장은 "평소 아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왜 런던을 택했느냐"고 하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 특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영국, 그중에서도 런던 자체가 갖는 다문화·다인종성에 주목했다"고 답했다. "아시아 신흥 부호 중 상당수가 런던에서 공부하고 이곳에서 금융 거래를 하는 상황에서 런던만큼 그들에 대한 패션 브랜드의 홍보 효과가 높은 곳이 없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이번 행사에 런던시 측의 협조가 컸다"며 "20여 년 전만 해도 유럽인들은 패션 행사장에 동양인이 나타나면 뒤쪽으로 밀어내기에 바빴는데 이제는 아시아의 시대가 온 걸 실감한다"고 했다. "현재 정체된 명품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아시아를 너무 모른다는 겁니다. 한류스타 빅뱅이 입은 옷을 팝스타 윌아이엠이 입는 현실에서 살고 있는데, 그저 스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총괄 디자이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죠." 그는 "이젠 서양인들이 화려하고 원색인 아시아 패션 취향을 쫓아가고 있다"며 "그런 면에서 MCM은 아시아와 유럽, 두 가지 정서를 전부 아우를 수 있으니 한결 유리한 조건에 있는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