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엿보세요

방은 완전히 어둡다. 손을 더듬어 들어가면 그 중간에 또 다른 방이 있다는 게 느껴진다. 거기엔 한쪽이 깨져 나간 반투명의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면 양팔걸이 의자에 앉은 벗은 여성이 몸을 씻고 있다. 방 곳곳에는 여인을 훔쳐 보기에 딱 좋은 틈, 틈이 있다.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변신'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 전시를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마련한다. 제목은 '변신 이야기: 티치아노 2012'전. 이탈리아 출신의 르네상스 화가 베첼리오 티치아노(Tiziano· 미상~1576)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토대로 그린 세 점의 명화 '다이아나와 악타이온(Diana and Actaeon)' '다이아나와 칼리스토(Diana and Callisto)' '악타이온의 죽음'을 세 명의 현대 화가들이 재해석한 것이다.

세 작가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이는 '관음증'을 주제로 행위예술을 선보인 마크 웰링거(Wallinger). 웰링거는 회화, 설치미술, 비디오 아트, 조각 등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다이아나(Diana)'란 제목의 이 행위예술은 티치아노의 '다이아나와 악타이온'을 소재로 '남성의 훔쳐 보기'를 다룬다. 원작 신화는 사냥꾼 악타이온이 우연히 여신 다이아나의 목욕 장면을 훔쳐 보게 되는 내용이다. 다이아나는 이에 대한 복수로 악타이온을 사슴으로 만들어 사냥개의 먹이가 되게 한다.

웰링거의 '다이아나'에는 6명의 여인이 다이아나가 되어 등장한다. 그들은 나체 상태로 화장을 하고 목욕을 한다. 관객은 유리창과 열쇠 구멍, 커튼 틈 등 모두 4개의 구멍을 통해 이들을 엿볼 수 있다.

관람객들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숨을 죽인 채 그 장면을 보면서 '21세기의 악타이온'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정말 보고 싶은 것은 작품인가, 벗은 여성의 몸인가.'

작가 웰링거는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다이아나와 악타이온 신화는 궁극적으로 관음증에 대한 우화"라며 "이 작품은 남성의 '훔쳐 보기'와 여성의 누드에 대한 역사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내셔널 갤러리는 13세기부터 1900년대 초기 엄숙한 유럽의 회화작품 23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곳. 이런 곳에서 관음증을 주제로 한 행위예술과 작품을 선보인 것에 대해 영국 미술계는 놀라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 디렉터인 니콜라스 페니는 "웰링거의 작품은 사생활 침해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그저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웰링거의 작품을 통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셔널 갤러리는 웰링거의 작품 옆에 티치아노의 원작 '다이아나와 악타이온'도 함께 전시한다.

미술관에 무용을 끌어들이는 것은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 셋은 티치아노의 작품을 소재로 발레 무대 세트와 발레복을 만들어 전시한다. 영국 로열발레단은 이 세트와 의상을 활용해 7월 16일 세 편의 발레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이 공연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트라팔가광장 등 모두 18곳에서 동시에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