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2000만원만 맡겨도 PB(프라이빗뱅킹)서비스 제공"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직장인 A(36)씨는 은행 두 곳에 나눠 맡겼던 여윳돈 3000만원을 최근 씨티은행으로 몰아넣었다.

지난 3월부터 씨티은행이 VIP 고객의 기준을 크게 낮춰 1억원 이상 예치한 부유층에게만 제공하던 PB(프라이빗뱅킹) 서비스를 2000만원 이상 예치 고객들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A씨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산 관리 전담 직원의 재테크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외국 출장이 잦은 그에겐 해외 ATM(현금 입출금기) 수수료 면제도 요긴한 서비스다. 궁금한 게 있으면 365일, 24시간 운영하는 콜센터에 전화로 상담할 수 있다. A씨는 "금리 차이를 좇아 은행을 옮겨 다녀 봤자 차비 빼면 별로 남는 게 없었다"며 "금리가 좀 낮더라도 제대로 대접해 주는 은행과 거래하는 것이 남는 장사인 것 같다"고 말했다.

◇'넥스트 프리미엄(next premium)' 고객 1100만명을 선점하라

씨티은행은 지난 3월부터 A씨와 같은 예금액 2000만~1억원 미만 고객을 집중 공략해 새 고객으로 유치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씨티은행 자체 분석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 정도 예금 자산을 보유한 사람은 1100만명에 달한다. 씨티은행은 또 이들의 예금액이 해마다 15%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대기업 과장·차장으로 2000만원 이상을 예치할 수 있는 사람을 지금 고객으로 붙잡으면 앞으로 부장·임원으로 승진하며 1억원 이상을 꾸준히 맡길 평생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몇 년 안에 프리미엄 고객으로 성장할 계층이라는 이유로 '넥스트 프리미엄(next premium)' 고객으로 불린다. 씨티은행은 공격적 마케팅 덕분에 3월 이후 넥스트 프리미엄 고객 수를 5% 늘리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뜨는 해' 대학생·청년 직장인 미리 붙잡기

금융권의 차세대 VIP 고객 붙잡기 경쟁은 직장인뿐 아니라 대학생으로까지 그 폭을 넓히고 있다. 삼성증권은 작년 10월부터 20~27세 대학생을 상대로 무료로 CMA(종합자산관리) 계좌와 체크카드를 만들어 주고 있다. 휴대폰 요금 할인, 이체·출금 수수료 면제, 온라인 주식거래 수수료 우대는 물론, 취업 멘토링이나 토익시험 응시료 보조 같은 혜택도 제공한다. 회원 숫자는 1만명을 넘어섰다.

신한은행의 경우 부모와 자녀를 '패밀리 패키지(family package)'로 묶어 함께 VIP로 대접하고 있다. 개인 단위가 아니라 가족 단위 예금액이 1억원이 넘으면 VIP 고객에게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부모의 소득이 줄어도 자녀들의 소득이 늘면서 예치액 1억원 이상인 가족 단위 고객을 오랫동안 단골로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새 수요 창출" vs "미래 고객 확보 장담 못해"

한국투자증권 문진호 전무는 "요즘 같은 저성장 시대에는 전문직, 대기업 임직원처럼 안정적인 근로 소득을 가진 계층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며 "이들에 대해 선제적으로 CRM(고객관계관리)을 적용해 접점을 가지면 블루오션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사들이 고객에게 고수익을 안겨주는 혁신적 금융상품 없이 PB 서비스로만 미래 고객을 붙들어 두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연희 BCG(보스턴컨설팅그룹) 대표는 "금융사 고객들은 자신의 소득이나 지위가 올라가면 기존에 거래하던 금융사보다 고소득·고위직 고객을 많이 거느린 다른 금융사로 갈아타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