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구입~정제에 6주… 정유사, 밑지고 판다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에 빨간 등이 켜졌다. 국제 유가가 하락하며 손실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가 오르던 지난해엔 사상 최대 실적을 냈지만, 올 들어선 가격이 내림세로 돌아서면서 실적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

동양종금증권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올 2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2분기의 절반 수준인 2261억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에쓰오일은 영업이익이 올 1분기의 4분의 1 수준인 917억원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정유사들이 중동에서 비싸게 사들인 원유를 국내에서 정제하고서는 수입가보다 싼 가격에 파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유가 하락에 악전고투하는 정유사

국내 정유사들이 원유를 주로 수입하는 곳은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카타르 등 중동. 우리나라까지 유조선으로 실어오는 데 대략 20일이 걸린다. 수입한 원유를 공장에서 정제해 휘발유·경유 등 시판 석유제품으로 만드는 과정도 2주 이상 걸린다. 원유 선적 때부터 판매까지는 총 5~6주가 소요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유사가 석유제품을 공급할 때 가격은 원가 기준이 아니다. 국제 제품가격에 운송비 등을 반영해 결정된다. 석유제품은 몇 가지 환경기준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해 국제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된다. 우리나라는 1997년 석유시장을 개방, 해외 제품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만약 국내 정유사가 원유 도입가격을 기준으로 비싼 가격을 매기면, 수입업자들이 국제 시장에서 제품을 사들여 올 수 있다. 국제 유가가 오르는 시기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비싸게 받고, 내릴 땐 원가보다도 싸게 제품을 내놔야 하는 게 바로 이런 이유다.

예를 들어 A정유사는 5월 첫주에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거래되는 두바이 원유 가격인 115.36달러에 맞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0만 배럴을 유조선에 선적했다. 이후 국제 원유가는 계속 떨어졌고, 정유사가 6월 둘째 주에 석유제품을 판매하려고 할 때는 가격이 원유가격보다 낮아졌다. 당시 싱가포르 시장에서 거래되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각각 배럴당 103.25달러와 113.42달러. 수송과 정제에 들어간 비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원유보다 제품가격이 2~11% 낮아진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원유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실이 3000억원가량 될 것으로 추산된다.

◇국제 가격에 연동해 불가피한 결과

국제 유가가 일정한 수준에서 움직일 때는 문제가 없지만, 유가가 지난해처럼 꾸준히 오르거나 반대로 올해와 같이 계속 떨어질 때는 정유사 실적에 큰 영향을 준다. 작년에는 유가가 계속 오르는 바람에 정유사들이 상대적으로 큰 이득을 봤다. 원유를 싸게 사서 6주 후에 판매할 때는 석유제품 가격이 더 올라서 이익이 많이 난 것이다.

정유사 관계자는 "정유사마다 화학과 윤활유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정유 부문의 실적 변동성이 심하기 때문"이라며 "유가 상승기에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에 대해선 정유업 자체의 구조적 숙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업체들은 수출 비중이 높아 이웃 일본보다 국제 가격을 빠르게 쫓아가는 경향이 있다"며 "가격이 오름세일 땐 일본보다 더 빨리 올라갔지만, 최근 하락기에는 반대로 가파르게 가격이 내려가고 있어 타격이 더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