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닫는 사회… VVIP(상위 1% 상류층 고객)도 백화점 발길 끊는다

"VVIP(최상위 고객) 매출까지 꺾이고 있어요. 불황의 골이 한없이 깊어지는 느낌입니다."

한 유명 백화점 고위 임원은 구매액 상위 1%에 해당하는 상류층 고객의 매출 추이 통계를 뽑아보고 깜짝 놀랐다. 최근 2년간 줄곧 두 자릿수를 유지하던 상위 1% 고객 매출 신장률이 지난해 말부터 한 자릿수로 내려앉은 데 이어 2분기에는 3%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상류층 고객과 명품 매출은 백화점의 호황을 이끌어 온 '캐시카우'였다. 지난해 40%대였던 명품 매출 증가율도 올 들어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신세계백화점이 지난달 유명 브랜드의 재고 의류를 정리하기 위해 마련했던 대규모 할인행사에는 DKNY, 아르마니주니어 등 평소 할인행사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해외 고가(高價) 브랜드가 대거 참여했다. 지난달 29일 시작된 백화점들의 여름 정기 세일은 지난해보다 2주일이나 늘어 오는 29일까지 무려 31일간 계속된다. 정기 세일 이전에 1주일간 '브랜드 세일'을 했고 그 이전부터 '시즌오프'(off), '가격 인하' 등으로 사실상 계속 할인을 해왔다.

백화점들은 세일뿐 아니라 '○○상품 대전' '균일가 할인전' '반값 기획전' 등 갖가지 이름을 붙인 행사를 통해 매출 방어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신통찮다. 올 1분기 매출 신장률이 1%로 떨어진 롯데백화점의 한 간부는 "이제 정상가 상품은 팔리지 않는다"며 "할인을 많이 하면 그런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입점업체들이 재고를 줄이기 위해 할인·기획 행사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들은 국내 고객들의 소비 감소가 통계 수치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소비자는 지갑을 더 닫는데 그 자리를 중국 관광객 등 외국인들이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올해 중국 관광객 상대 매출은 1분기에 152%, 2분기에 220% 등 계속 세 자릿수 신장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체 매출 신장률은 세일기간이 집중된 2분기에도 3.5%에 지나지 않았다.

현장의 소비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들을 보면 백화점보다 서민의 생필품 구매가 많은 대형마트에서 더 나쁘게 나타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6월 대형마트 매출은 작년 6월보다 7.4%, 백화점은 1.2%가 각각 줄었다. 올 들어 두 업계의 매출이 동반 감소한 것은 지난 4월에 이어 두 번째이며, 특히 대형마트의 매출은 석 달째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4월 말부터 시행된 대형마트 의무 휴업도 매출 부진에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내구재 소비도 줄고 있다. 국산 자동차 판매는 작년 같은 달보다 3.7% 감소했다. 올해 2월(5.5%)과 5월(0.7%)에만 반짝 늘었을 뿐이다. 내구재 소비 감소는 소비재 소비 감소보다 향후 경기 전망을 더 어둡게 하는 지표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지표상으로는 괜찮았던 고용도 6월 취업자 증가 폭이 40만명 선 아래로 떨어져 둔화될 조짐이다. 취업자 증가 폭은 작년 9월(26만명) 이후 줄곧 전년 같은 달 대비 40만명 이상을 유지해오다 지난달 36만5000명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일자리 증가의 내용도 좋지 않다. 6월 취업자 증가는 50대가 24만6000명, 60세 이상이 22만2000명으로, 50대 이상 고령층에서 이뤄졌다. 20대 취업자는 3만4000명, 30대는 7만명 오히려 줄어들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자영업 창업도 여전히 증가해 6월 자영업자(월급을 안 받는 가족 봉사자 포함)는 작년보다 17만명 늘어난 718만5000명에 달했다.

최근 롯데그룹이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하고 포스코가 초긴축 예산을 편성하며 현금 확보에 나서는 등 대기업들의 허리띠 조이기도 본격화돼 경기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실제 인력 감축에 들어간 곳도 있다. GS칼텍스는 외환위기 이후 14년 만에 영업 인력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고 최근 대한항공은 55명을 희망퇴직 처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