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vs 애플 패권 경쟁] 싸우면서 닮는 2강… 차별화 없이 난타전 조짐

지난 5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S3 첫 공개 행사는 첩보전을 방불케 했다. 행사는 3월부터 기획됐지만 삼성에서도 소수 고위 임원만 내용을 알 만큼 비밀리에 준비됐다. 행사 담당 직원은 물론 외부 관계자도 일일이 각서를 써야 했다. 행사 날짜·장소, 발표 내용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애플과 삼성의 맞대결 이후 전 세계에서 삼성의 새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3'에 대한 문의가 쇄도했지만 삼성은 함구했다. 전략 스마트폰에 대해선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 같은 국제 이동통신전시회에서 사전에 공개했던 관례도 깼다. 공개 전까지 극도의 보안 유지로 유명한 맞수 애플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5월 3일 '갤럭시S3' 런던 발표 행사는 결국 전 세계 54개국 23만명이 인터넷으로 실시간 시청하는 대호황 속에 마무리됐다. '갤럭시S3'는 출시 두 달이 안 돼 1000만대 이상 팔리는 텐밀리언 셀러로 등극했다. 제품 정보에 목말라하는 소비자들의 갈증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놓은 뒤에야 터뜨린 이벤트가 크게 빛을 발휘한 것이다.

◇'마니아'에서 '대중'으로 시장 넓히는 애플

삼성의 '갤럭시S3' 보안은 경쟁사에 대한 신제품 정보 차단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애플의 '신비주의' 마케팅을 많이 연상시킨다고 설명한다. 애플은 매년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신제품을 내면서도 사양, 공개 시기·장소 등 일체의 관련 정보를 비밀에 부쳐 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신비주의가 마니아들의 신제품에 대한 갈망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내왔다.

실제 삼성과 애플 두 회사는 이젠 본래 누구의 고유 전략이었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케팅, 상품 기획에서도 거의 비슷한 전략을 구사 중이다. 가령 애플은 지금까지 스마트폰·태블릿PC에 있어 동일한 화면 크기, 매년 고정된 시기 출시라는 전략을 고수해왔다. 아이폰의 경우 매년 신모델을 내놨지만 화면 크기는 3.5인치에서 바꾸지 않았다. 아이패드 화면은 매년 9.7인치였다.

하지만 최근 크게 달라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애플이 올 하반기 7인치 후반대 아이패드 신제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애플의 전 CEO인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삼성의 7인치대 태블릿PC를 가리키며 "너무 작아서 쓰려면 손가락을 사포로 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 수준이다. 애플의 새 스마트폰 '아이폰5' 역시 이전과는 달리 4인치 후반대로 출시된다. 이는 삼성이 간 길을 그대로 따라오는 형국이다. 삼성은 처음부터 스마트폰은 3~5.3인치, 태블릿PC는 7~10.1인치까지 다양한 제품을 출시해 소비자층을 크게 넓혀 왔다. 애플은 아이폰 출시시기도 매년 6월에서 삼성처럼 연중 수시 발표 쪽으로 바꾸고 있다.

변화 시도는 애플이 자사 제품에 대한 소비자층의 확대를 노리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자신들의 방침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주는 소수 마니아 중심에서 삼성처럼 다수의 보편적 대중으로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강력한 맞수로 나서면서 애플 역시 소비자의 요구를 고루 맞춰줄 수 있는 다변화전략으로의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의 감성 접근법…결국은 차별화 요인 확보가 관건

반면 삼성은 애플의 감성 마케팅을 닮아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비주의' 마케팅을 펼치는 것은 물론 소프트웨어와 인간과의 교감을 강조 포인트로 삼고 있다. '갤럭시노트' '갤럭시S3' 등의 신제품에 다양한 콘텐츠와 강력한 인체 인식 기능을 넣은 것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공략해온 다양하고 폭넓은 소비자들을 이제는 삼성 제품에서 떠나지 않는 마니아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올 연말 애플이 내놓는 인터넷 접속기능 TV '애플TV'가 이런 형국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애플의 스마트폰(아이폰)→삼성의 스마트TV→애플의 애플TV 식으로 서로를 벤치마킹하는 모습들이 또 한 번 반복되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특허 분쟁, 세트·부품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두 회사가 전략마저도 비슷해질 경우 두 회사 모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특허 분쟁, 완제품·부품 등 전선(戰線)에 이어 전략(戰略)까지도 동일해지면 그때부턴 그야말로 난타전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지금까지 두 회사가 성장한 동력은 남과 다른 차별화된 경쟁력이었다"며 "차별화된 접근법 없는 소모적 혈투가 계속된다면 구글 등 제3의 업체가 어부지리를 얻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