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어머니 살려준 이 사회에 은혜 갚을게요"

그러던 중 중국에 있는 어머니의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송씨는 가진 돈을 모두 긁어모아 어머니를 한국으로 모셔왔다.

인천공항에서 만난 어머니는 1년 전 중국에서 봤던 사람이 아니었다. 말도 못하고, 사지(四肢)를 꼼짝도 못해 휠체어를 탄 상태였다. 당시 어머니는 혈액암이 많이 진행돼 암세포가 뼈를 녹여 갈비뼈 8개가 부러지고 척추도 녹아든 상태였다. 면역 체계가 무너져 언제든 폐혈증으로 숨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돈이 없어 병원은 엄두도 못 낸 송씨는 "집에서 식이요법 같은 걸로 어떻게든 어머니를 편안히 해 드리려 했지만, 어머니는 가만히 누워서도 고통에 겨워했다"고 했다. 그는 "탈북한 후 어머니랑 같이 지낸 날도 얼마 안 되는데, 꼭 언젠가는 효도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내 앞에서 '빨리 죽는 게 너한테도 좋다'고 말하는 어머니를 보며 가슴이 미어졌다"고 했다.

결국 송씨는 어머니를 무작정 여의도성모병원으로 데려갔다. 제발 살려달라고, 평생 갚겠다고 애원했다. 김씨를 맡은 혈액종양내과 한치화 교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고통이 엄청났을 텐데 할머니 눈빛만은 또렷했다. 그분들이 얼마나 어려운 삶을 견뎌오신 분들인지 나중에 듣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고 했다. 송씨의 딱한 사정을 들은 병원은 700여만원의 치료비 전액을 지원하기로 했다.

송씨는 "기적이 일어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났다. 어머니의 상태가 몰라보게 호전된 것이다. 송씨는 병원에 감사를 표하는 편지를 썼다. 도움에 감사하고, 앞으로 베푸는 삶을 살겠다는 내용이었다.

11일 송씨는 장기기증을 하겠다는 신청을 냈다. "지금 가진 건 이것밖에 없으니까요. 앞으로 은혜를 갚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어느덧 한국 생활 10년. 열심히 뛰고 뛰었건만 여지껏 생활난에 시달리면서 살다 보니 부모님한테는 물론 다른 사람한테 하나도 베풀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 나 자신 정말 염치없고, 이번에 도움받을 자격 일 푼어치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제 제가 앞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도움의 손길을 베풀겠습니다.'

지난 9일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됐다. 편지를 쓴 사람은 이 병원에 입원한 김숙자(76)씨의 딸 송산옥(46)씨였다.

병원에서 만난 송씨는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도 많을 텐데 정말 감사하다"며 어머니 손을 잡고 내내 눈물을 흘렸다. 웃고 있던 어머니 김씨의 눈에도 이내 눈물이 고였다. 한 달 전만 해도 어머니 김씨는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으로 '짧으면 1개월, 길면 6개월'이라는 통보를 받은 시한부(時限附)였다. 그러나 지금은 건강이 많이 회복돼 이달 말 퇴원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송씨를 포함한 세 형제와 부모는 1987년 탈북했다. 그러나 북한 땅에서 탈출한 지 6개월 만에 아버지가 병으로 숨졌고, 살길이 막막해진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돈을 벌어야 했다. 가장 생활력이 강했던 송씨는 1990년 러시아로 건너가 2001년까지 보따리 장사를 하며 가족에게 돈을 부쳤다. 신분이 불안정했던 러시아 생활을 정리한 송씨는 2003년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 가족 모두를 데려오는 꿈을 꿨다.

그러나 쉽게 되는 일이 없었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한 달에 두 번 쉬며 일했지만 버는 돈은 한 달 110만원 남짓. 2004년 결혼한 남편의 벌이도 한 달 100만원 안팎으로 두 식구가 생활하기에도 버거웠다. 꾸준한 저축으로 작년 용달차를 구입했지만, 보험도 안 든 상태에서 일을 하다 10일 만에 사고가 나 폐차(廢車)하기도 했다. 송씨는 "모든 의욕을 잃었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왜 나는 항상 똑같은지, 세상을 많이 원망했다"고 말했다.